“미국식으로 감사원이 추경집행 사전통제”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이한구 예결위원장

지난해 말 국회는 지역별 노인복지관 리모델링 공사비를 올해 예산에 책정하면서 항목별 금액만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일단 국회에서 예산을 따내기만 하면 입찰 방식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해당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결정하면 됐다. 하지만 올해 추가경정예산부터는 예산안에 시공사 선정, 자금 편성 및 집행, 사후 관리 방식 등에 대한 단서 조항이 붙게 된다. 그것도 부처나 지자체를 감시 감독하는 감사원의 의견을 받아 이를 ‘예산안 부대의견’으로 첨부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회는 이번 추경예산 심사부터 사전에 감사원의 구체적인 의견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감사원이 추경예산 항목별로 ‘집행 유의사항’을 전달하면 국회가 이를 받아서 예산안에 부대의견(가이드라인)을 다는 방식이다. 예산안 항목을 크게 몇 개로 분류한 뒤 항목별로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는지를 명시한다. 예산안 부대의견은 준(準)법률적 효력을 갖기 때문에 국회의 구속력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사진)은 3일 “예산 누수를 막기 위해 엄격한 재정규율을 만들 방침”이라며 “7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 실행 과정에서 연방회계감사원(GAO)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GAO는 작년 10월 제정된 ‘긴급경제안정화법’에 따라 60일마다 재정 집행 상황을 의회에 보고하는 등 감시 감독을 강화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추경의 용처와 집행방식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회나 행정부 차원의 책임을 묻기 위해 감사원에 예산 유형별 유의사항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감사원이 주로 예산 집행의 사후 감시자 역할을 했지만 이번 추경예산부터는 감사원의 역할을 미국처럼 확대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결위와 한나라당은 감사원에 GAO처럼 일정 기간마다 추경예산 집행 현황을 점검하는 상시 감사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경에 투입된 예산이 기존 본예산에 합쳐져 돈의 출처를 구분하기 어렵고 인력도 부족해 감사원에서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상시 감사보다는 올해 하반기에 중간 점검을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가 감사원의 예산통제 기능을 이처럼 넓히려는 것은 이번 추경예산 규모가 28조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인 데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서둘러 집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누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감사원이 돈을 빨리 쓰라고 재촉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며 “재정 조기집행보다 재정의 효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추경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 같은 사전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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