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北동향 감시-고강도 훈련 통해 대승 거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2002년 北위협 축소 급급하다 허 찔려 6명 전사

■ 1, 2차 연평해전 차이점


남북 해군 함정들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각각 1, 2차 연평해전을 치렀다. 승패는 크게 달랐다.

1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은 함정 2척 침몰, 3척 대파에 수십 명 전사라는 큰 피해를 봤다. 반면 남측은 함정 2척이 약간 손상되고 장병 11명이 부상했을 뿐 전사자는 없었다.

하지만 3년 뒤 2차 연평해전에선 남측 고속정 1척이 침몰했고 장병 6명이 전사, 19명이 부상해 피해가 컸다.

이런 차이가 빚어진 주요 원인은 무엇보다 군 당국의 대비 태세 차이에 있었다.

1차 연평해전의 경우 해군은 발발 수개월 전부터 북한의 도발 징후를 감지하고 과거 서해상 도발 유형과 전술, 전력 배치 현황 등을 철저히 분석해 대응책을 마련했다.

특히 북방한계선(NLL) 수호를 책임진 해군 2함대 소속 지휘관과 장병들은 북한 해군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며 실전 같은 고강도 훈련과 교육을 통해 전투태세를 갖췄다.

군 상부에서도 햇볕정책으로 크게 해이해진 장병들의 대적관을 확고히 하고 도발에 완벽히 대비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군 관계자는 “당시 군은 북한의 도발 징후부터 실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철저한 준비와 작전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차 연평해전은 군이 북한의 도발 징후를 간과하고 방심한 측면이 컸다.

북한 경비정들이 도발 2주 전부터 계속 NLL을 침범하자 당시 언론들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군 당국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군 당국은 북한 경비정들이 꽃게 잡이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NLL을 넘어온 것일 뿐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북한이 3년 만에 ‘복수’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북한 경비정과는 근접 기동을 피해야 한다는 1차 연평해전의 실전적 교훈을 무시한 교전규칙도 문제였다. 아군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에 다가가 시위 및 차단 기동을 하면서 선체 측면을 노출했고 기습을 노리던 북측의 선제공격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군 소식통은 “당시 군이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해 북한의 대남 위협을 축소하기 급급했던 좌파 정권의 ‘코드’에 맞췄다가 허를 찔린 셈”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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