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위험 부풀려 선동” “검역주권 포기” 격돌

  • 입력 2008년 5월 8일 03시 02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 청문회’에서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 청문회’에서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에 대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청문회가 7일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협상이 타결된 이유 △검역조건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 이유 등을 집중 질의했다. 특히 통합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선물을 주기 위해 권고사항에 불과한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해 광우병 발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30개월 이상 소까지 수입을 허가해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광우병 발병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후속 대책이 미흡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야당이 광우병 위험을 부풀려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협상

鄭농림 “수입중단, GATT 20조 근거로 실행 가능”

野“빨리 재협상한 뒤 명문화해야 분쟁 안일어나”

“미국에서 실제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발언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런 방침은 4월 18일 한미 간 합의문 5조 내용을 부인하는 것이란 점에서 향후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통상마찰이 일어나더라도”라는 말 자체가 ‘마찰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미 양국은 ‘광우병 발생 시 미국이 자체 검역절차를 밟고, 그 결과를 확인한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쇠고기 안전등급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한국은 수입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광우병 발생 시 수입 중단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20조를 근거로 실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GATT 20조 B항은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 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협정 적용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빨리 미국과 재협상한 뒤 이런 의지를 명문화해야 나중에 통상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정 장관을 몰아세웠다. 그동안 ‘재협상 불가’를 강조해 온 정 장관은 “광우병이 없다고 확신한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책임지고 중단하겠다”고만 답했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 역시 “이 사안은 두고두고 한국 사회의 논란을 부를 것”이라며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논쟁을 벌였다.

정 의원은 “협상합의문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부터 한국이 한 조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국제교역의 관례에 맞는지”를 물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 본부장은 양자 간 협상보다 상위 개념인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을 거론하면서 ‘깜짝 놀랄 방침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쇠고기 협상합의문에 한국이 비상상황에 내릴 수 있는 모든 건강보호 조치를 다 담지는 않았다”며 “어느 국가나 자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방적 중단에 따라 미국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 장관은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예정대로 15일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즉각 중단한다는 내용을 정부 고시에 포함시킬 것이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협상 결과를 고시하는 것과 향후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중단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답했다.

■안전성

“국민 80%가 광우병 검역체계 불안 느껴” 질타에

鄭농림 “美쇠고기 내장탕 공무원 밥상 올릴 용의”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놓고 여야 의원들이 격돌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국민의 건강 주권을 포기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 75.1%가 국민건강 안전성이 우려된다고 답했고, 광우병 검역체계에 대한 평가에서도 80.1%가 불안하다’고 했다”며 “결국 축산농가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정상회담 선물을 준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이에 대해 “안전성이나 위생 문제는 여론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또 “헌법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번 협상은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정 장관은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며 광우병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7년 5월 이후 광우병에 걸린 소가 한 마리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또 공무원들이 앞장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정부가 정부중앙청사, 정부과천청사 등 정부기관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탕을 내놓을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정 장관은 즉각 “용의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답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먹을거리 안전성은 객관적 사실과 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이성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이지 정치 공방의 대상이나 선동의 구호거리로 부각돼서는 안 된다”며 “광우병 논란이 책임 주체는 없고 사회적 후유증만 남는 또 다른 선례로 추가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괴담 공방

與“괴담 유인물 발행처 찾아보니 한총련도 있어”

野“배후세력-선동 운운 말라… 자발적인 참여다”

한나라당이 이날 광우병과 관련한 ‘괴담’의 배후로 야당과 일부 단체를 지목하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는 등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사태에 순진한 어린 학생들까지 이용하고, 정치적 선동까지 하는 일부 세력과 야당의 행태는 과유불급”이라며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비난했다.

같은 당 차명진 의원은 “광우병 관련 괴담 등을 담은 유인물의 발행처를 찾아봤더니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이었다”며 “이러한 정치세력들이 불순한 의도로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배후 세력 운운하지 말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 한광원 의원은 “한나라당이 학생들의 자발적인 촛불 문화제를 ‘선동’ ‘탤런트들의 부화뇌동’ ‘철없는 행동’ 등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학생들은 무지하지 않다”며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 듣겠느냐”며 “학생들이 자진해서 거리로 나오는 것인데, 선동한다고 한다는 것은 본 의원과 상대 당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계진 의원은 이후 의사 진행 발언을 신청해 “강 의원이 (내) 발언을 오해했다”며 “일부 세력이 정치적 선동을 하고 있다고 했지, 어린 학생을 선동했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연속성

與“노무현 前대통령이 부시와 정상회담서 약속”

野“盧정부는 위험물질만큼은 제외시키려 애써”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과거 협상의 마무리’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설명해온 ‘설거지론’을 재삼 강조한 셈.

홍문표 의원은 한겨레신문이 2005년 6월 23일 보도한 한미정상회담 비화를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아직 안 되고 있다. 돌아가면 즉시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한국인 수만 명이 미국에서 먹고 가는데 (수입 금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과거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 이제 와서 사실과 다른 것처럼 말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국민 불안의 본질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미국에서 수입할 때 척추 등 특정위험물질(SRM)을 5종류나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올해 들어 갑자기 해 준 점”이라고 맞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쇠고기 수입 재개를 추진하면서도 위험물질만큼은 제외시키려 애썼다는 뜻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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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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