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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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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승리 이후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탈(脫)여의도 정치’를 선언했다. 그 대상은 특히 통합민주당 등 야권과 한나라당 안팎의 ‘친박’(친박근혜) 진영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대통령은 우선 4·9총선 의미에 대해 “집권 여당에 과반 의석을 만들어줬다”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 승리를, 일방적 패배를 안겨준 것도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153석이라는 ‘불안한 과반’의 현실을 인식하고 사안에 따라 대야(對野) 협상에 나설 수 있으며, 한나라당 안팎에 포진한 59명의 ‘친박’ 당선자의 실체도 무시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야권과 ‘친박’ 진영에게 총선 결과는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에 힘을 실어준 만큼 더 이상의 ‘여의도식’ 정치 논쟁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역설한 측면도 있다. 그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다”라면서도 “소선거구제가 생기고 여당이 153석을 받은 역사가 없다. 특히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이렇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예도 없다”고 강조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나에게 더 이상 국내에서 정치적 경쟁자는 없다. 내 경쟁자는 외국의 지도자이고 이들과 경쟁해서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국가로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면서 “총선 결과는 새로운 정치를 해달라는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경제 위기를 거론하며 “나라가 어려울 때 국내 문제에만 머리를 맞대서 나라가 잘되는 일이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미래를 향해 밖으로 나아가야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면서 “향후 5년 내 기회를 놓치면 선진 일류국가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당 밖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復黨) 논란에 대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친박’은 있을지 몰라도 ‘친이’(친이명박)는 없다”며 “한나라당은 하나가 되어서 경제 살리기를 이뤄내야 한다. 어떤 계보도 이 앞에서 힘을 쓸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외국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여야가 따로 없다”면서 “힘을 모아달라는 게 국민의 부탁이기 때문에 국내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밝힌 박근혜 전 대표와의 ‘국정 동반자’ 관계설정 방안과 박 전 대표가 제기한 당 외 ‘친박’ 당선자의 복당 요구 등 민감한 당내 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경기활성화 재원 마련 국회와 상의”▼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회견에서 “선거는 끝났다. 이제 기업이 투자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 경제가 살아나도록 속도를 내겠다”며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무역적자가 예상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이로 인해 내수(內需)가 실제 경제현장보다 더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아주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관련 정책을 펴나가겠다”며 경기 활성화에 주력할 생각임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이를 위해 “지난해 걷힌 초과 세수(稅收·15조3000억 원)를 예산으로 쓸 수 있도록 (5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국회와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세수 초과분을 활용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고 올해 발생할 세수 초과분의 규모를 하향 조정해 사실상의 감세 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국가재정법상 전년도 초과 세수 중 3분의 1(지난해는 4조8000억 원)만 추경예산에 편성할 수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거나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추경편성 조건이 한정돼 있어 5월 임시국회가 열릴 경우 관련 법 개정 등을 놓고 여야 간에 논란이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또 최근 일자리 창출 규모가 줄고 있는 것에 대해 “5월 국회를 열어 규제를 풀면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며 “특히 금융 관광 의료 등 서비스 산업 육성을 촉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관련 부처에서 빠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30일까지 서비스 수지 개선 대책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금융, 기업은행과 함께 통합 민영화(메가 뱅크)할지를 놓고 논란이 됐던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이날 “시장 상황을 봐가며 3년 안에 민영화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사실상 산업은행 민영화를 우선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경쟁하는데 금융 규모가 너무 작은 만큼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면서도 “그것(메가 뱅크) 때문에 산업은행 민영화가 늦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춘투(春鬪)를 앞둔 상황에서 노사 화합을 위해 기업의 자율 개혁과 노조의 협력을 부탁했다. 그는 “기업은 자율적 개혁으로 경영을 선진화하고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을 당부한다”면서 최근 삼성 특검 등을 감안한 듯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