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원칙 실종… ‘내 사람 심기’ 각축장으로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1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청중에게 “대구 경제를 살리겠다”며 참석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1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청중에게 “대구 경제를 살리겠다”며 참석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추천심사위원 선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손학규 대표와 박재승 공심위원장이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회동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안철민 기자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추천심사위원 선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손학규 대표와 박재승 공심위원장이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회동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안철민 기자
《총선 지역구 공천이 대부분 마무리됨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계파별로 ‘내 사람’을 심으려 하는가 하면 원내 입성을 노리는 후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했던 근본 취지는 오히려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직능 대표성 확보, 전문 인재 등용, 소외 계층 배려라는 원칙은 보이지 않고 금배지를 향한 이전투구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 한나라, 당선권 배치 윤곽

여성몫 ‘1번’ 못찾아 고민

靑 ‘20명 리스트’ 전달설도

이재오 “40% 호남 배정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의 윤곽이 서서히 잡혀가고 있다.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미 당선권에 배치할 신청자들을 대부분 추렸으며 21일 현재는 순번 조정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심위는 비례대표 공천 소위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안강민 공심위원장과 친이명박 계열인 이방호 사무총장, 친박근혜 계열인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 등 3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심위원들은 비례대표 1번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관심을 끌 만한 여성을 낙점할 계획이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조윤선 당 대변인이 후보로 검토됐지만 논의 끝에 후순위로 밀렸고, 인수위원장을 지낸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과 배은희 리젠바이오텍 대표도 3∼9번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몫인 2번에는 최근 입당한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강성천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위원장, 최재덕 전 건설교통부 차관 등도 당선 안정권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당 사무처 당직자 출신으로는 이춘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박근혜 전 대표의 공보특보인 이정현 씨, 강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류명렬 교육수석전문위원 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출신으로는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한 임향순 호남향우회장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 출마했던 박재순 전남도당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이날 비례대표 후보 공천과 관련해 “이번만큼은 호남 지역에서 당의 비례대표 당선권에 호남 후보를 40% 이상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정 지역에 의석을 갖지 못하는 집권 여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현재 당 지지율로 볼 때 비례대표 당선권은 26명 안팎인 만큼 9명가량이 호남에 배정돼야 한다. 전남에 3명, 전북에 3명, 광주에 3명씩 공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 박희태 의원 등은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공심위원인 이은재 건국대 행정대학원장과, 강혜련 공심위원의 언니인 강혜숙 한영캉가루 대표도 당선권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당내에서는 “비례대표 공천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청와대가 당선권인 25∼27번에 포함시킬 20명 안팎의 명단을 당에 전달해 비례대표 공천이 사실상 청와대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한 당직자는 21일 “지역구 공천과 달리 비례대표 공천에서는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각계 명망가들이 포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민주, 추천위 갈등 일단 봉합

b>계파별 안배 사실상 인정

김정길-김삼웅 등 기관장

비공개 신청 드러나 물의

통합민주당은 비례대표추천심사위원회 선정 단계에서부터 홍역을 치렀다. 추천위원 선임을 놓고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원회 간 알력으로 일반 지역구의 공천 심사마저 중단돼 버린 것.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는 선에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이면에 깔린 문제는 그대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역구 공천에서 사실상 ‘물을 먹은’ 옛 민주당계는 물론 열린우리당 측도 앞 다퉈 자기 계파 인사들을 비례대표로 영입하려다 보니 추천위 구성에서부터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공천작업 초기부터 감지됐다. 대선 패배 후 ‘공천 혁명’만이 당을 살릴 수 있다며 공천과 관련한 전권을 공심위에 넘겼지만 비례대표만은 상위 30%를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가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비록 박재승 공심위원장과 ‘합의’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계파별 안배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둔 셈이다.

특히 두 대표와 박 위원장 등 단 3명이 비례대표를 정하다 보니 공천의 민주성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퇴보했다는 지적도 있다.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은 직능별 분과를 통해 1차로 후보를 거른 뒤 194명의 비례대표순위 확정위원회에서 투표로 순번을 결정했다.

비례대표에 도전하는 후보들도 이 제도의 본래 취지와 거리가 먼 인사가 많다.

이번에 민주당이 접수한 비례대표 후보는 259명. 본보가 이들을 직군별로 분류한 결과 비공개 신청자를 뺀 229명 중 정치인이 121명으로 53%를 차지했다.

이 중에는 전직 의원들도 포함돼 있어 비례대표를 퇴역 정치인의 ‘노후 생계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지역구 공천에서 떨어진 현직 의원이 경력란에 의원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원했는가 하면 현 비례대표 3명도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공개로 비례대표를 신청한 인사들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다. 민주당에 따르면 비공개 신청자에는 현 정부 들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지역구 불출마 선언을 한 이화영 의원을 비롯해 대학교수 겸 시민운동가로 알려져 있는 S 씨,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J 씨와 C 씨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김정길 회장과 김삼웅 관장은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비공개로 비례대표를 신청해 이중적인 처사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린 한 민주당 당직자는 “비례대표가 아닌 ‘몰래대표’를 하겠다는 처사다. 낙점이 되면 좋고, 떨어져도 그만이라는 것이냐”라며 분개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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