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80년대 논리에 묶인 진보,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야”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코멘트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사에서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당 운영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사에서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당 운영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독배(毒杯)를 약으로 쓰지 못하면 먹고 죽을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대표직을) 받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는 19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당 대표직 취임을 ‘독배’라고 표현했다. 대선 참패 후 당의 활로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4·9 총선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직 수락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 대표 앞에는 대선 참패 후 당 쇄신과 4·9 총선이라는 난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이날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손학규식 새로운 진보의 실험’에 대해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손 대표는 본보 인터뷰에 이어 19, 20일 이틀 동안 5개 언론사와 연쇄 인터뷰를 하고 총선 대책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존 진보 세력은) 언필칭(言必稱) 국민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이념적으로 싸우기만 했다”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진보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 “기존 진보는 말로만 평등이고, 말로만 분배”

―당내에 손 대표의 ‘제3의 길’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존 진보세력이 국민에게 버림받은 것은 말로만 진보이고, 말로만 평등이고, 말로만 분배하고, 말로만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실제로 주는 것이 있어야지…. 빵을 줬느냐, 옷을 줬느냐.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는 이제 실제로 다가가서 뭐 하나라도 실제 이익과 도움이 되는 것을 주는 진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말하는 새로운 진보는 공리공론이나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 속에서 함께하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진보다. 새로운 진보는 보수와 낡은 진보에 대한 대칭점 대립선 상에 있다.”

―당 일부에서는 보수와 차별성이 없다고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해도 분명히 우리가 지켜야 할 진보적 가치가 있다. 나 자신도 시장경제주의자지만 시장이 다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늘에서 사는 사회 소외계층과 약자에 대해서 적극적인 배려를 하는, 정말 인간의 얼굴을 가진 따뜻한 시장경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실용주의와 내가 얘기하는 중도적 실용적 가치는 다르다. 이 당선인의 실용주의는 기능을 중시하고 사람에 대한 가치가 돋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대운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것을 통해서 경기를 부양한다, 건설경기를 일으킨다 이런 것만 보지, 한번 파괴되면 복원할 수 없는 자연의 가치, 생명의 가치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얘기하는 중도적 실용적 가치는 생명과 평화가 함께 있는, 그 속에서 국민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낡은 진보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다.

“공상적 사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그게 뭐냐. 머릿속에서는 최고의 유토피아가 그려지지만 실생활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1980년대 변혁 논리에 우리를 묶어 둬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역사의 부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대표직 취임을 독배라고 표현했다.

“민주개혁세력의 오늘의 위치가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이다. 그 세력이 손학규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이 바뀌던 것과는 다르다. 손학규의 리더십이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위상과 성격이 어떻게 규정될 것인가 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대표 취임을) 독배라고 하던데…. 독배를 받은 거다. 나는 ‘이것을 먹고 죽는다. 이것을 약으로 쓰지 못하면 먹고 죽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독배를 받았다.”

○ “함께 바꿔 나가는 것이 쇄신”

―최고위원 인선을 하면서 ‘쇄신을 위한 안정’이라는 말을 썼다.

“쇄신이라고 하면 물갈이, 잘라내고, 쫓아내고, 배제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쇄신한다고 하면서 당내가 싸움장이 되고, 재떨이가 날아가고, 각목이 난무하면 국민이 보기에 좋겠느냐. 눈에 보기 싫은 것, 당장 불편한 것 다 쫓아내고 잘라내면 그게 무슨 쇄신인가. 함께 바꿔 나가는 게 쇄신이다. 당이 하나가 돼서 쇄신의 여건과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 이번 최고위 인선이다.”

―완전한 탈바꿈을 원하는 국민이 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것 같다.

“쇄신은 인적청산 이전에, (당이) 앞장서서 양도소득세 같은 것을 인하한다고 하고 그것도 2월 국회에서 바로 처리하자고 하는 이런 것이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 이런 것이 쇄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조직법에 대해서도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합리적인 정책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여당에 대해서 단 한 건도 협조하면 안 된다는 식이 되면 안 된다. 당이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자기 결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지도부라는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바뀌고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제부터가 과제라고 생각한다.”

―4월 총선에 대비한 인재 영입과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인재 영입은) 지금까지는 잘된다고 볼 수 없다. 국민의 관심이 대통령직인수위 쪽에 있고, 우리는 선거에 참패한 정당인데 선뜻 여기에 와서 뭘 하겠다고 하겠는가. 공천심사위가 정말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하도록 할 생각이다. 명망 있는 외부 인사에게 공심위원장을 맡길 것이다. 위원들끼리 지분을 갖고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싸움의 장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민주당 등 범여권 제 세력과의 연합은….

“힘을 합치고 얼마든지 연합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연합과 결합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이 제대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도 있다. 변화된 모습을 국민에게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숙제이고 무엇보다도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자기 변화가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부 슬림화 좋지만 대통령 권한집중 곤란

한미 FTA 농어민 등 피해대책 보완 필요

與에 협조할건 협조, 거부할건 단호히 거부”

○ “부처는 기능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야당이 되는데 여당이나 정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여야를 강조하기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국민 행복을 기준으로 할 것이다. 이 원칙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할 수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지만 당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겠다. 건전한 정책 정당으로서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거부할 것은 단호히 거부하는 야당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생각은….

“행정조직을 효율화, 슬림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 취지로 정부조직을 개편한다면 그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야 한다. 어쨌든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뽑아준 데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조직은 기능만 중시해서는 안 되고 국가와 국민의 정신이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권력 분산이 세계적인 흐름인데 대통령에게 권력이 더 집중되는 모습은 곤란하다.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한 국가인권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통일부는 남북화해 협력과 통일로 가는 국민정신이 담긴 부처다. 오직 기능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폐지되는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에 대한 생각은….

“21세기 미래지향적 부처들이 있다. 정통부는 우리같이 조그만 나라가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엔진 역할을 했던 부처다. 과기부는 과학기술만이 살길이라는 미래 비전을 담고 있다. 해양부는 해양대국을 꿈꾸면서 세계로 진출하는 전위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도 우리의 국가발전과 경제발전 단계와 비교하면 여성의 지위와 권한이 아주 낮아 이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그런 정신을 담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통과시킬 생각인가.

“한미 FTA는 조금 더 검토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미 FTA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고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 주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해 당사자가 있고, 상대방 국가가 있다. 또 피해산업, 특히 농민들의 이해관계가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보호나 사후대책이 깊이 있게 검토돼야 한다. 미국 의회가 어떻게 처리하는가도 같이 검토해야 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