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뜯기 염증난 국민 상대로 ‘한방’ 허풍만 고집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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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선거는 한국 민주주의 정당체제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의석 141석의 원내 제1당이자 사실상 집권당이 대선 두 달여 전까지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대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대선 후보가 결정되자마자 후보 단일화를 들고 나오면서 공당의 후보 결정 시스템 자체를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빚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네거티브 캠페인이 주요한 대선 전략으로 사용됐고 그 과도함은 역대 대선 사상 유례가 없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후보자 개인의 과거에 모든 논의가 집중되면서 정책선거는 실종됐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만이 검증의 대상이 됐고 다른 후보들은 이에 무임승차하는 모양새로 검증을 지나쳤다. 후보자 검증과 정책 검증의 병행이라는 바람직한 선거에 대한 희망은 18대 대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 네거티브에 묻힌 정책선거

이번 대통령선거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독무대였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선거 전략의 하나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정책선거는 실종됐고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는 늘어났다고 정치 관련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의 효과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 이 전략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대체적이다.


촬영 : 동아닷컴


촬영 : 김동주 기자

○ ‘한 방 신화’가 부른 네거티브 캠페인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을 불과 두 달여 남긴 10월 15일에야 대선 후보를 결정했다. 정책이나 비전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남은 기간은 너무 짧았다는 사실이 네거티브를 부른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단기간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네거티브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민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제기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BBK 사건과 관련된 의혹은 상당 부분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나라당 내에서 후보자 검증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네거티브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이슈가 깨끗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한 방’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6월부터 제기된 이 당선자에 대한 BBK 의혹은 이미 ‘BBK 피로감’을 불러왔고 국민은 이에 무감각했다. 김형준 교수는 “국민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손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결론을 내렸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를 간과했다”고 분석했다.

12월 5일 검찰이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당선자가 무혐의라고 밝힌 이후에 네거티브는 더욱 심해졌다. 이 교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이런 태도는 법치주의라는 측면에서 공권력에 대한 혼돈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 네거티브 학습효과 나타날 것

정치학자들은 다음 대선에서는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거티브가 대선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효율성 문제에 대한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1960, 70년대에 네거티브가 극심했다. 그러나 네거티브를 한 쪽이 패하면서 네거티브가 사라져 갔다”며 “이번 대선은 정치인, 유권자, 미디어 등 정치의 중요 행위자들이 이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네거티브 단독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적 이슈와 병행하지 않고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전문가인 유성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BK연구단 박사는 “미국 역대 대선에서 후보자의 능력(competence)이 입증되었을 때 정직(integrity)이 이슈가 된 적은 없었다”며 “한국 대선이 미국 대선과 유사해지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일부 제한하는 ‘네거티브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본보의 10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에 ‘공감한다’(79.5%)는 여론이 매우 높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주요 전략화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형준 교수는 “각 정당이 서로 이해관계가 없을 때 차기 대선의 당내 경선 일정을 미리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1년 내내 이합집산

정체성도 없이 ‘헤쳐모여’…단일화 타령

17대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이합집산’이었다.

정당 간 세력 간 이합집산이 수시로 이뤄졌고, 정치인들의 당적 변경이 잦아지며 ‘철새’라는 기존 용어 대신 ‘달새(달마다 당적을 바꾸는 의원)’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 정치공학 난무했던 한 해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탈당파, 시민사회단체, 손학규 전 경기지사 그룹 등 7개의 비(非)동질적 정치세력들이 모여 대선 4개월을 앞두고 창당한 ‘대선용 정당’이었다. 이 중에는 6개월 사이 5번이나 당적을 바꾼 의원도 20여 명이나 있었다.

9월부터 시작된 신당 경선에서는 ‘친노 단일화’라는 말이 회자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이어 유시민 의원까지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이해찬 의원으로 단일화 한 것을 빗댄 말이다. 유시민 의원은 당시 “출마 선언 하는 날부터 한 달 동안 계속 ‘단일화 안 하면 역적’이라고 여기저기서 압박해 괴로웠다”고 말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주변 정치인들의 행보도 뒷공론을 낳았다. 9월까지만 해도 “단일화 가능성은 99%”라고 하다가, 지지율이 조금씩 상승하자 “끝까지 혼자 간다” “국정을 망친 주범인 정동영 후보는 무조건 사퇴해야 한다”로 방침을 바꿨다.

이후 “정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한다”며 말을 바꿨고, 선거 막판에는 이른바 ‘시민사회 원로’ 인사들의 중재안에 따르겠다고 했다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결렬됐다.

대선 두 달 전 문국현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신당의 원혜영 김영춘 이계안 제종길 문병호 이상민 의원 중에서는 김영춘 의원만이 실제로 탈당해 문국현 후보를 도왔다. 나머지 의원들은 특별한 해명 없이 정동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보직을 수행했다.

경희대 임성호 교수는 “유권자들도 투표에 앞서 최소한 몇 달은 후보의 궤적을 살펴보고 정책을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기회 자체를 봉쇄한 정치권의 합종연횡 시도는 국민을 무시한 행위다. ‘예측 가능한 정치’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념도 정체성도 묻지 마

신당과 민주당 간의 합당 및 후보 단일화 논의도 대선 막판까지 이어졌다. 후보와 당 지도부끼리 ‘당 대 당 통합’을 결의하고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합의문 서명까지 마쳤지만, 신당 내부 반발로 인해 하루 만에 백지화됐다. 당 대 당 통합이 결렬된 이후에도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 간 단일화 시도는 대선 일주일 전까지 계속됐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대선 이틀 전 탈당해 신당으로 당적으로 옮기며 정동영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국민중심당, 중도통합민주당을 거쳐 민주당으로 적을 옮긴 뒤 당 대선 경선을 완주한 신국환 후보는 대선 보름 전 갑작스레 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석달 전만 해도 “열린우리당 같은 좌파정당에 몸 담을 수 없다”며 “끝까지 민주당 지킴이로 남겠다”고 했던 그였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 캠프에도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12월 11일 김혁규 전 의원이 캠프 합류 선언을 했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의장 선거 때 ‘중도개혁세력의 대변자’임을 자처한 그였지만 ‘보수 진영 합류’로 처지를 바꾼 이유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는 선거를 10시간여 앞둔 18일 오후 8시경 기자회견을 통해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는 “국민 정치 수준이 높아졌다. 살림살이에 관한 정책이나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단순한 이합집산 이벤트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정치권은 뼈저리게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촬영 : 이종승 기자


촬영 : 김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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