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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1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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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10년 전 대선이 있던 해에도 대선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대형 사건들이 있었다. 2위 후보 측에서 1위 후보를 추격하기 위해 ‘의혹’을 제기하고 여론이 조성되면 고소·고발전을 통해 검찰을 끌어들이는 식이었다. 검찰이 애초부터 ‘수사 유보’ 방침을 정한 1997년 대선에서는 순위가 바뀌지 않았고,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면서 의혹이 확산됐던 2002년에는 순위가 바뀌게 된다.
1997년에는 10월 중순, 2002년에는 8월 초순에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 개입 여부를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대선을 코앞에 둔 11월 중순이라는 점이 다르다.》
1997년 김대중, 비자금 670억 의혹
그는 “일가 친척들을 총동원해 각 은행 계좌로 분산해 돈을 넣었다, 여당 사무총장이 근거 없이 말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해 7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출됐던 이회창 후보는 최대 6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두 아들의 병역미필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락하기 시작했고, 10월 들어서는 이 후보 25% 대 김 총재 33% 정도로 야당 후보에게 뒤졌다.
이 후보 측은 폭로 일주일 뒤인 10월 16일 김 총재를 뇌물수수,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DJ 비자금 내사자료’를 근거로 발표했던 이 후보 측은 구체적인 부동산 명세까지 제시하며 검찰이 조기 수사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국민회의 측은 ‘집권세력의 공작에 따른 검찰의 대선 개입은 절대 안 된다’며 강력히 저항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무리한 수사 개시는 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명백한 증거를 앞에 두고 접는 것은 수사권 포기다”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21일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 총재 비자금 의혹 고발사건 수사를 15대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사를 계속할 경우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해질 것이고, 수사 기술상 대선 전에 이를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수사 유보 방침은 민심이반을 우려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최종 결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검찰이 수사권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결국 김 총재는 대선에서 승리했고, 김태정 검찰총장은 새 정권의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한 번 ‘유보’된 비자금 수사는 대선 이후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2002년 이회창, 병역비리-금품수수 의혹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서서히 빠지고 ‘컨벤션 효과(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한동안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본 이 후보가 1위로 차고 오르던 즈음이었다.
7월에는 검군(檢軍)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에서 활동했던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에서는 김 씨가 각종 사기전과가 있는 범죄자임을 들어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무책임한 폭로’라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그를 양심수 다루듯 적극 비호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 23건에 달하는 고소·고발 공방이 이어지자 검찰은 8월 초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4월에는 당시 설훈 민주당 의원이 “이 후보의 측근이 ‘최규선 게이트’의 주역인 최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 “이 후보의 부인이 1997년 기양건설에서 10억 원을 받았다”고 각각 폭로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검찰은 10월 중순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이 후보의 장남 이정연 씨 병적기록표 위·변조 여부, 병역문제 은폐대책회의 개최 여부, 금품수수 의혹 등에 대해 모두 ‘증거 없음’이라고 결론내렸다. 최대 45% 선을 상회하며 당선이 유력시됐던 이 후보의 지지율은 한때 13%대로 곤두박질쳤다.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만으로도 지지율 하락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증거’를 쥐고 있다던 김 씨는 검찰 출석을 거부하다 대선이 끝난 뒤인 2003년 1월 검찰에 다시 출두했으며, 사건은 싱겁게 종결됐다. 이 후보를 둘러싼 금품수수와 자녀 병역비리 의혹은 모두 무혐의로 판명됐고, 그해 2월 김 씨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설훈 전 의원 역시 같은 시기 김 씨와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2003년 12월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2007년 이명박, BBK 횡령사건 연루 의혹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도 6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후보의 주가조작 연루설을 추가로 제기했다.
6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2001년 조사 당시 ‘이 후보와 무관하다’는 조사 결과와 관련해 “현재까지 서류상 드러난 바로는 이 후보의 주가조작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이 후보 측이 7월 박 전 대표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자 검찰은 “신속히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며 사건을 특수1부에 배당했다. 이 후보 측은 결국 고소를 취하했으나 검찰은 “이번 수사는 이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 차원을 넘어섰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의혹을 풀어 줘야 한다”며 수사를 계속했다.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을 1주일 앞둔 8월 13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BK와 관련한 수사는 김 씨 귀국 이후로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BBK 사건이 한나라당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경선이 끝난 뒤 대통합민주신당이 바통을 이어받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BBK 사건은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웬만한 의혹은 걸러져 ‘신선도’가 떨어진 듯했으나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대세론’을 저지할 최후의 카드로 물고 늘어졌다.
BBK 사건과 관련해 이 후보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사이의 충돌은 갈수록 심해졌다. 여기에 BBK 사건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의 국내 송환설이 돌면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올해 국정감사는 ‘이명박-BBK 국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곳곳에서 충돌했다. 7∼9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봉주 서혜석 김종률 의원 등은 연일 BBK 사건에 이 후보가 연루됐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자료를 제시했고 한나라당은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나 자료로 맞섰다.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 씨가 귀국하면 이 후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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