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치졸한 취재통제…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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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언론 대못질’…기사송고실 폐쇄강행

《노무현 대통령이 예고했던 ‘기자실 대못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기자들이 합동브리핑센터 새 기사송고실로의 이전을 거부하자 정부는 11일 인터넷과 일부 전화선을 차단하는 등 각 부처 기사송고실의 폐쇄 조치에 나섰다. 각 부처 기사송고실은 작성한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전화선, 무선인터넷 등 대체 통신수단을 찾는 기자들의 바쁜 움직임으로 하루 종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불편이 있더라도 정부의 일방적인 취재통제조치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뜻을 모았다.》

일부 청사 전화선까지 끊어 기사송고 차질

브리핑 거부-기사송고실 출근투쟁 결의

정부 관계자 “우리도 곤혹…” 답답함 토로

○…새 통합브리핑룸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정부중앙청사 별관)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이날 국정홍보처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데 이어 12일부터 기사송고실을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 기자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해도 너무한다. 치졸함의 극치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정부가 인터넷 접속 차단조치를 취하자 속도가 훨씬 느린 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무선모뎀 등을 이용해 기사송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유선랜(LAN) 접속에 비해 안정도가 크게 떨어지고 전송속도도 느려지는 바람에 업무에 큰 차질을 빚었다.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기사송고실이 폐쇄될 경우 합동브리핑센터로 이전하지 않고 청사 로비에서 기사를 작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자실 대못질’ 사태와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곤혹스럽다. 브리핑을 하고 싶어도 상황이 이러니…”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촬영 : 전영한 기자

○…정부의 기사송고실 폐쇄 강행에 대한 항의 표시로 주요 부처 기자들이 브리핑을 거부하기도 했다.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은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브리핑룸에 내려와 브리핑을 시작하기 직전 “일방적으로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을 강행할 경우 우리 기자들은 강력 대처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며 브리핑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브리핑룸에서 퇴장했다.

이에 권 부총리는 난감한 표정으로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오늘 정례브리핑은 취소한다”며 집무실로 돌아갔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입 기자들도 이날 예정된 공정위의 ‘대·중소기업간 하도급 공정거래협약 선포식’ 브리핑을 거부했다. 오전 10시 반에 시작된 브리핑에는 일부 방송사 카메라기자만 참석했다.

산업자원부 출입기자들은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이번 주말까지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브리핑 거부 등 추후 대응 방안을 결정키로 했다.

통일부는 이날 보도 자료만 배포하고 브리핑은 하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에 하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정례브리핑도 국회 상임위원회 개최를 이유로 취소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5층 기자실을 이용하는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기자는 “개인적인 일로 며칠 동안 기자실을 비운 뒤 돌아와 보니 인터넷 접속선도 끊겨 있고 내일까지 당장 기자실을 폐쇄하겠다고 하니 당혹스럽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기자들은 12일 오전 기사송고실이 폐쇄되면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기사송고실의 인터넷을 차단했지만 출입기자들은 개인 사물을 그대로 둔 채 ‘출근 투쟁’을 벌였다.

조·석간 기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기사송고실을 지켰고 일부 기자는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기사를 송고했다. 무선인터넷을 쓰지 않는 일부 기자는 정통부 건물 13층에 있는 기사송고실에서 휴대전화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한 뒤 같은 건물 8층에 위치한 KT 기자실로 내려가 기사를 송고했다.

출입기자들은 10일 총회를 열고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반대 및 통합브리핑 거부 의사’를 재확인했고 출근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정통부는 이날 “조만간 무선인터넷과 전원도 모두 차단해야 한다”며 ‘기자실 폐쇄 방침’을 거듭 밝혔다.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은 이날 오후 6시 반경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정부가 조치를 철회할 때까지 모든 브리핑을 거부하고 통합브리핑센터 기사송고실도 이용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 기자는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이기 때문에 그 어느 부처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며칠 전 변재진 장관이 불시에 기자들을 소집해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편법 브리핑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가 언론을 정책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 종합

▼ “국민 알권리 침해하는 반민주적 폭거”▼

과천청사 9개 부처-예산처-행자부-국세청 출입기자들 성명

각 부처 출입기자들은 11일 정부의 일방적인 기사송고실 폐쇄 조치에 반대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정부과천청사 내 9개 경제·사회부처 출입기자들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정부는 언론과 시민단체, 학계, 정치권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사송고실의 인터넷과 전화선을 끊는 조치를 강행했다”면서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언론의 감시기능을 말살하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규탄했다.

성명에는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공정거래위원회, 노동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환경부 등 9개 부처 출입기자들이 참여했다.

기획예산처 출입기자들은 이날 별도의 성명서를 통해 “국정홍보처의 기자실 폐쇄 조치에 대해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며 예산처가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실시할 경우 거부할 것이라는 의사를 재차 밝혔다.

행정자치부 출입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홍보처의 인터넷 지원 중단은 언론의 견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판단한다”며 “정책 집행 상황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취재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싸워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국세청 출입기자들도 성명을 내고 “정부가 기존 기사송고실의 통신설비 가동을 중단하면서까지 기사송고실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언론의 정당한 취재 접근을 막으려는 야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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