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문 ‘지도자 동지 사진’ “盧대통령 얼굴보다 잘보이게”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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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3명 오른쪽 3명‘1호 사진’을 찍을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운데에 위치하도록 하는 게 불문율로 되어 있다. 3일 오전 정상회담이 열린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와 촬영한 기념사진도 그렇다. 평양=연합뉴스
왼쪽 3명 오른쪽 3명
‘1호 사진’을 찍을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운데에 위치하도록 하는 게 불문율로 되어 있다. 3일 오전 정상회담이 열린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와 촬영한 기념사진도 그렇다. 평양=연합뉴스
7년 전과 판박이북한 신문들에 게재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악수 사진과 7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사진(맨 아래)의 각도를 비교해 보면 양쪽 모두 김 위원장이 더 잘 보이도록 촬영한 사진을 게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평양=연합뉴스·동아일보 자료 사진
7년 전과 판박이
북한 신문들에 게재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악수 사진과 7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사진(맨 아래)의 각도를 비교해 보면 양쪽 모두 김 위원장이 더 잘 보이도록 촬영한 사진을 게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평양=연합뉴스·동아일보 자료 사진
金위원장 권위 높이는 최상의 각도 ‘1호 사진’ 게재

단체사진 등장인물 홀수로 맞춰… 金, 항상 정중앙에

TV보도에도 동영상 사용 않고 사진-멘트만 내보내

북한의 4대 일간지라 할 수 있는 ‘노동신문’ ‘민주조선’ ‘청년전위’ ‘평양신문’은 3일자 1면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일제히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헤드라인도 ‘로무현 대통령 평양 도착…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로무현 대통령을 맞이하시였다’로 글자 한 자 다르지 않았다. 이는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 신문에 실린 메인 사진(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일 4·25문화회관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는 장면)의 촬영 각도다. 7년 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서 만나 악수할 때 찍어 노동신문에 게재한 사진과 촬영 각도가 너무나 똑같다.

두 사진 모두 노 대통령이나 김 대통령보다는 김 위원장의 얼굴이 더 잘 보이는 각도에서 찍은 것이다. 김 위원장의 권위를 높여 주기 위한 배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의 언론학 교과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의 사진을 ‘영상사진’이라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보통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1호 도로’라고 하거나 전용열차를 ‘1호 열차’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호 사진에는 각종 기념사진과 현지 지도 사진, 초상화 등이 포함된다. ‘1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의 사진은 사진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촬영과 편집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기자가 1957년부터 2005년까지 50년간 홀수 해의 1월분 노동신문에 게재된 1호 사진을 전수 분석한 결과(2007년 2월 북한대학원대 석사학위논문)에 따르면 1호 사진은 북한에서 수령제가 확립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부터 ‘특별대우’를 받아 왔다.

이 시기는 김 위원장이 선전선동부를 통해 정치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고, 1967년 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선전 문화 분야 고위 간부들을 비판 숙청하고 개인숭배와 유일사상 체제를 본격적으로 굳히기 시작한 때다.

1호 사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과감한 사이즈로 매우 빈번하게 게재한다. 전신사진(풀 샷)이 많으며 엄숙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스냅사진보다는 연출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젊은 시절에 그린 초상화를 쓸 때도 많다. 김 주석의 초상화는 25년간 똑같은 것을 사용했다.

또 다른 특징은 여러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을 경우 ‘지도자’가 반드시 가운데에 오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런 대칭구도는 성화(聖畵)나 불화(佛畵) 등 종교화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김 위원장 관련 사진의 70∼80%는 이런 구도에서 촬영한 것이다.

외빈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김 위원장이 가운데에 오도록 좌우에 항상 같은 수의 인원을 배치한다. 199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방북했을 때도 김 위원장은 첫 촬영은 연장자인 정 회장을 가운데에 두고 촬영했으나 다음 사진은 자신이 가운데 서서 촬영했다. 남측 매체에는 첫 번째 사진을 제공했으나 북한 내부 매체에는 두 번째 사진을 게재했다.

김 위원장의 공식행사는 복수의 ‘1호 사진가’와 ‘1호 촬영가’가 담당한다. 그러나 TV로 생중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에 노 대통령과의 첫 만남도 다섯 시간 후인 2일 오후 5시 10분 뉴스를 통해 12분간 녹화 방영했다. 3일의 공식 회담 소식은 오후 8시 TV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보도했지만 동영상이 아닌 스틸 사진이었다. 이는 동영상을 통해 최고 권력자의 불필요한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사진과는 달리 1967년 이후에는 누가 1호 사진을 찍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보안이나 경호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호 사진가는 당연히 당성이 투철한 노동당원 중에서 선발한다. 주로 김일성대 조선어문학과 출신 중에서 선발했으나 1970년대 초 평양연극영화대학에 4년제 사진학과가 생긴 이후로는 이 학과 출신이 담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의 사진은 촬영과 게재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단조롭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가 체제유지를 위한 고도의 계산에 따른 것이어서 앞으로도 북한 언론에서 김 위원장 사진과 관련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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