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가 대통령 자문기관이냐”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코멘트
청와대가 “앞으로는 (대통령이) 발언하기 전에 일일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보고 말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발언 내용이 선거법에 저촉되는지를 선관위에 질의한 것에 대해 법조계는 ‘오기 정치’라고 비판했다.

법조계는 특히 발생할 사안을 가상해 선관위에 판단해 달라고 한 것은 법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이석연 변호사는 10일 “일일이 선관위에 물어보고 말하겠다던 대통령의 엄포가 기어이 실현됐다”며 “헌법과 헌법기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제헌절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 우습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또는 사전 선거운동 여부를 판단할 때 같은 내용의 발언이라도 발언을 하게 된 동기, 시기, 대상, 방법, 전체 내용과 맥락, 빈도 및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또 선관위 결정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판결은 이미 발생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뜻한다. 사전 심의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선거사범 수사를 전담하는 한 공안 검사는 “가령 자치단체장이 홍보물에 특정한 행적을 보도하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되느냐고 선관위에 질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자리에서 ∼한 얘기를 하려 한다’는 가정에 대한 질의는 한 번도 없었다”며 “한마디로 선관위에 시비를 걸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앞으로 할 말이 선거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선관위가 답변하고, 그래서 대통령의 말이 달라진다면 그게 자문기관이지 헌법기관이냐”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 검토를 거부한 데 대해 “청와대 의견서에 적시된 특정 날짜와 장소에서 대통령이 의견서에 적시된 내용과 똑같이 발언할 것인가라는 유동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선관위가 최근 대통령 발언에 대해 내린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과 이번에 회신한 내용은 법적 행위의 일관성에 견줘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청와대는 선거법 9조(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는 선언적 규정의 성격이 강한데도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등에 대해 ‘위법’이라며 대통령의 행위를 규제한 반면 이번 선관위 회신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신중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천 대변인은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청와대 견해와 선관위에 보낸 질의서 공개 여부는 하루나 이틀가량 시간을 두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선관위에 보낸 질의서 내용에 대해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위장전입 사건과 대운하 보고서 논란과 관련해 이 후보 측이 청와대의 정치공작이란 주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했고, 이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수준의 반론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수준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고 소개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