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국민 대통합 말하는데 ‘범여권’ 한정짓지 말라”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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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사실상 자신의 대선조직인 선진평화연대의 성공적인 출범에 상당히 고무돼 있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추구하는 국민 대통합에 자신감을 내비치며 민주주의의 양 날개 중 한 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13년 동안 양지에만 있다 탈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손으로 책상을 치고 목소리를 높여 “한나라당이 손학규를 제대로 대접한 적이 있느냐”며 격하게 반응했다. 19일 서울 서대문구의 손 전 지사 캠프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1시간 예정이었으나 손 전 지사의 격정 토로가 이어지면서 2시간 가까이 걸렸다. 21일에는 e메일로 보충 질의를 하고 답변을 받았다.》


촬영: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 ‘범여권 대통합’ vs ‘국민 대통합’

―선진평화연대(선평련)가 출범했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서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고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진화다. 그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에너지를 결집하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선진평화연대는 중요한 틀이 될 수 있다.”

―선평련을 정당으로 발전시킬 생각이 있나.

“과연 지금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냐, 또 하나의 분파작용으로 비칠 것이냐는 심각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지금 당장 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은 없지만, 결국은 정당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요것만으로 정당을 할 거냐, 좀 더 큰 틀로 할 거냐는 남겨져 있다.”

―선평련에는 이른바 ‘수구 좌파’도 있다.

“가입비 10만 원씩 낸 추진위원이 3000명 정도 된다. 한 사람 찍어서 너는 이래서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통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과거 어떤 생각으로 활동했다고 해도 지금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 모습에 동조하고 진정성만 가지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색 빼기’를 통한 범여권 대통합과 새로운 정치가 결이 맞는가.

“과거의 모든 것을 낙인으로 찍고서 가면 아무도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손학규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내부적 욕구가 새로운 에너지로 바뀐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정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범여권 대선후보 선정 작업에 참여하나.

“범여권이 기존 여권의 재구성이라면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다. 거기에 단순히 편입되는 것이라면 아무런 역할도 할 게 없다. 뭔가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국민 대통합을 이야기했다.”

―새 정치의 이상과 통합에 장애가 된다면 출마 뜻을 접을 수 있나.

“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에서든 주인이 되라)라고 했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국민 대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자꾸 (범여권 통합을 얘기하고) 그러지 말라. 나는 통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민주주의는 양 날개로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 날개가 부러졌다. 보수는 정치적 상수가 됐으나 과거 이념과 이상만 앞세운 진보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걸 봤다. 지금은 정치의 양 날개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그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다.”

―양 날개는 결국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1 대 1 구도’와 같은 이야기 아닌가.

“정치 구도와는 상관없이 세계적 추세와 정당정치의 기본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 날개라는 것이 ‘좌측’은 아니다. 좌측이라는 한 단어만 나가면 좌파정당이 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좌파정당이라기보다는 중도적인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범여권 정권 재창출의 대장이 되는 건가.

“누가 지금 정권 재창출을 이야기하나. 나를 통 좁은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했지 않나.”

―노무현 대통령 및 DJ 세력과 연대해야 하지 않나.

“앞으로 전개되는 걸 봐야 된다. 그러나 정치 현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끊임없이 이상을 갖고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 “한나라당 탈당에 떳떳하다”

―노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지목해 ‘보따리 장사’라고 거듭 얘기했다.

“솔직히 재미있다. 내가 막 화나고 분노했을 것 같은가.”

―정권교체 필요성을 강조하다 범여권 대표주자로 집권한다면 모순 아닌가.

“‘너 한나라당에 13년이나 있지 않았느냐’ 하는 정서 있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1993년 국회 들어갈 때 한나라당이나 민자당에 들어갔다기보다는 김영삼(YS) 개혁정부에 들어간 것이다. 1993년 2, 3월 당시 김영삼은 영웅이었고 개혁의 화신이었다. YS가 레임덕 들어가면서 정치적 구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 구세력이 이회창 총재를 앉힌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계속 찬밥이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지사가 된 것 아닌가.

“물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서 도지사가 됐다. 그런데 내가 한나라당을 위해서 도지사로 싸웠다는 점은 생각 안 하나. 나는 떳떳하게 한나라당을 통해서 내가 갖고 있는 선진화의 꿈과 이 나라의 평화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손학규를 제대로 받아줬느냐는 거다. 그래서 내 꿈과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나온 사람을 단지 탈당이라는 것으로 그걸로 낙인찍고 천형을 주려고 하는가.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할 일 아니라 이거다. 그러나 저를 사랑하고 저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한나라당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는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당에 있을 때 개혁을 말했어야 한다는데….

“안 했나? 내가? ‘내가 한나라당 간판 되면 수구꼴통당, 영남지역당이니 감히 그런 소리 하겠느냐’고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말하다 항의 얼마나 받았나. 그런 소리 하지 말라. 마치 내가 나올 때 침 뱉고 나온 것처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대단히 분노를 느낀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서 찬밥 먹을 때 얼마만큼 거기에 대해 지원을 해 줬느냐는 말이다.”

―계속 남았다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었나.

“바로 그거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 고꾸라진다. 박근혜가 되겠느냐. 그럼 당신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두 가지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정치하는 사람이 남의 불행, 요행이나 바라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설사 그런 일이 있어도 한나라당이 나를 얼굴로 세우려면 우선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가 바꾸려고 해도 안 되는 한나라당의 기본 틀이 있다. 내가 한나라당 얼굴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정치하는 목적은 아니다.”

○ 햇볕정책은 ‘세상 가는 물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

“햇볕정책은 명분이 아니라 실질이다. 나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햇볕정책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정책’이라고 공언했다. 세상 가는 물길이 있는데 그걸 거부해서는 안 된다. 상호주의가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현실과 미래에는 맞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 시절의 불법 대북송금까지 용인하는 햇볕정책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어떤 조항은 마음에 안 든다. 안 했으면 하는 것도 많이 포함돼 있다. 그것 때문에 FTA 반대할 것인가. 큰 틀에서 보자는 거다.”

―5억 달러 불법 송금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 내용에 대해 다른 주장이 있지 않나. ‘그럼 그거 하나 때문에 내가 (햇볕정책을) 부정해야 하느냐’고 나는 자문해야 할 것이다.”

―불법 송금이 결국 북한 핵무장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작년 북한 핵문제가 터졌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핵 반대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두 후보는 눈치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핵실험 했으니까 모든 게 완전 단절이라고 해야 하나.”

―북한 핵의 볼모가 됐다는 우려도 있다.

“나도 답답하게 생각한다. 북한 핵 폐기가 궁극적 목표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느냐다.”

―햇볕정책이라는 다리를 통해 DJ와 호남에 닿으려는 것 아닌가.

“햇볕정책에 대해서 시비를 붙는 것이 거꾸로 햇볕정책이 아니라 김대중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닌지 냉정하게 자기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현 정부는 대선 전 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한다.

“할 수 있으면 하되 내용을 갖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제공조, 특히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하라는 것이 내가 제시하는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 참여정부는 국민 에너지 모으지 못해

―현 정부의 공과는 무엇인가.

“하나하나 정책보다 크게 국민 마음이 편하지 못한 4년이었다.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커져 가는 시민사회와 시장에 믿고 맡기는, 그래서 자율성 확보해 주는 것들이 부족했다. 어려울 때 국민 에너지를 묶어 가는 힘이 부족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정책은 참여정부처럼만 하라”고 했다.

“경제는 경제인에게 맡기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기업 하는 사람이 사회적 대접을 받고 기업 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생긴다며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지 않는 점이 아쉽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경제 마인드가 임기 초부터 있었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정리=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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