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과 '연락사무소' 설치 시큰둥한 배경은…

  • 입력 2007년 3월 7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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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5,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1차 회의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을 뛰어넘어 곧바로 외교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6일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락사무소는 중국과 했던 모델이고 미·중 관계에서 볼 때 매우 훌륭한 모델이었다"며 "내 생각에는 북한과는 그런 점이 공유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은 외교관계로 가고자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베트남 등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과의 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수교에 앞서 반드시 연락사무소라는 중간단계를 거쳐왔다.

더욱이 클린턴 행정부 집권 시기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도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먼저 개설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한 진전에 따라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한다고 돼 있다.

실제 수교를 위한 관문인 연락사무소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는 것이 수교문제 진전에도 훨씬 유리하다는 점에서 이를 건너뛰려는 북한의 속내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계 개선 의지를 확신함에 따라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수교문제를 해결하려는 바람과 의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미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대북관계 개선 의지와 행보는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오랜 숙원인 북미 수교의 가능성을 갖게 했을 수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해제,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지정대상 제외 등 부시 행정부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만 믿었던 사안들이 급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다 심지어 북핵 문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정보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과거와 달리 유연해진 상황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의지가 북한에 비교적 유화적이었던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며 부시 행정부에서 수교가 실현된다면 그것이 갖는 정치·외교적 승리가 비교가 안된다.

사실 북한은 90년대 초 클린턴 행정부 집권 시기까지만 해도 미국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으로부터 대사관은 고사하고 연락사무소 설치 자체에도 거부감을 갖고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네바 합의문 채택 이후인 1995년경 외무성에서 연락사무소 설치와 관련해 제출한 보고서를 보고 하룻밤에 설치, 취소 등 5회나 결심을 번복한 끝에 결국 보류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저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연락사무소든 대사관이든 미 공관이 평양에 설치되는 것을 극력 반대하면서 불가피한 경우 나진·선봉무역지에나 설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증언했다.

외교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북한이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어 성조기가 펄럭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관 경호를 위해 미 해병대원들이 무장한 채 상주하는 것을 용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북한이 외교적 관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수교에 앞서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외교적·경제적 문제를 논의하는데 수월할 수 있고 수교문제 논의도 빨리 진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연락사무소 단계를 뛰어넘는 조속한 북·미 수교를 바라는 북한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힐 차관보가 밝혔듯 북미수교 문제는 비핵화 문제와 연계돼 있어 북한의 바람이 실현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과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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