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당 떠나지만 나를 공격하면 대응할 것”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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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면서 이달 안으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만찬에 참석한 한명숙 총리도 사의를 표명하고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6일 이후 정치권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면서 이달 안으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만찬에 참석한 한명숙 총리도 사의를 표명하고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6일 이후 정치권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22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저녁 모임에 대해 “최후의 만찬 같은 침울한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날 만찬은 노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가진 상태에서 여당 지도부와 하는 마지막 회동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탈당이란 표현 대신 ‘당적 정리’란 말을 쓰고 싶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이어 “과거 대통령처럼 임기 말 당에서 밀려나는 대통령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픈 선례를 끊지 못하고 당적 정리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한다”며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도 (탈당의) 큰 이유였다”고 토로했다.

이달 중 당적 정리 절차가 마무리되면 노 대통령은 2003년 9월 민주당 탈당에 이어 재임 중 여당을 두 번 탈당하는 첫 대통령이 된다. 탈당 시기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르다.

2시간여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노 대통령은 농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주로 포도주가 나왔지만 참석자들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

다음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대변인의 브리핑을 토대로 재구성한 참석자들의 주요 발언 내용.

▽노 대통령=당에서 공식적으로 당적 정리를 요구한 적은 없지만 일부라도 내가 부담된다고 느끼면 갈등의 소지가 된다. 그래서 당적 정리를 생각했다. 다만 당이 순항하는 모습을 본 후 정리하고 싶어서 기다렸다. 당에 도움이 안 돼 매우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정세균 의장=비감을 느낀다. 당도 책임이 있다. 안타깝다. 대통령 당적 정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있으나 대통령의 결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통령 당적과 관계없이 우리는 참여정부의 성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제 여당도 아니고 원내 1당도 아니지만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

▽장영달 원내대표=공동 책임이다. 더 적극적으로 할 일을 찾아서 하겠다.

▽한명숙 국무총리=당 출신 총리로서 역할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자책감이 든다.

▽노 대통령=열린우리당이 정책으로 창당의 정체성을 잘 지켜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해선 충분한 협의를 못해서 미안하다. 당에서 논쟁도 하고 공론에 부치는 과정을 거쳐도 됐는데 너무 큰 사안이라 조심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나 행정을 하다 보면 결단의 방식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부동산 문제는) 과잉 투자된 건설 수요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비록 당적을 정리하지만 특정 언론의 페이스로 나를 공격하는 것엔 대응하겠다. 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 전략과 가치가 충돌한다면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정치인, 정치집단의 가치는 정체성이 중요하다.

○ 여당 소멸 후 국정 운영 변화

노 대통령의 탈당은 곧 열린우리당이 여당의 지위를 잃게 된다는 의미다. 여당이 없어지면 당정관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열린우리당과 당정협의 대신 각 정당과의 개별 접촉을 통해 정책 입법에 대한 협조를 구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를 위해 정당-정부 간 협의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국회에선 당장 공석인 국회 운영위원장 직 배분을 비롯해 국회 상임위 재조정 문제가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대통령 탈당으로 실질적으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느냐”는 탄식도 많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논평에서 “탈당은 국정 실패와 향후 정국 혼란에 따른 모든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면서 통합신당의 길을 터 주려는 기획탈당”이라며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즉각 탈당 의사를 철회하고 중립내각을 구성해 민생경제 회복에 전념하라”고 주장했다.

○ 후임 총리 인선은

후임 총리로는 충남 공주 출신인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과 충남 논산 출신인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등 제3의 카드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총리 외에는 개각 폭이 크지 않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이재정 통일, 이상수 노동,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여당 출신 장관의 교체 가능성에 대해 “한 총리 교체로 된 것 아니냐”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내가 당적을 정리할 때까지 시간이 있다”는 말도 해 개각 폭을 놓고 숙고 중임을 내비쳤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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