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바다”에 각계는 “허탈”

  • 입력 2007년 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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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동해를 ‘평화의 바다’라고 부르자고 전격 제안한 것은 1992년 이래 정부가 동해라는 이름을 찾기 위해 일관되게 진행해 온 노력과 배치되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모든 국제지도가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1992년 처음 국제무대에서 동해라는 명칭을 제안한 뒤 14년간 외교적 노력을 다해 겨우 3% 정도가 동해를 병기하는 수준”이라며 “그동안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탈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한쪽선 동해 되찾기 온힘 쏟는데…

▽동해 단독 표기한 외국정부 한 곳도 없어=국제사회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해양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라는 책자에서 일본해(Japan Sea)라고 규정한 뒤부터다. 세계 각국은 ‘해양의 경계’에 기초해 해도 및 관광·특수지도 등을 만든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동해라는 명칭을 찾기 위한 노력을 벌인 때는 1992년이다.

그해 정부는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서 한일 양국이 동해에 대한 단일 명칭을 합의할 때까지 ‘동해/일본해’를 병기할 것을 국제사회에 요구했다.

외교통상부가 중심이 된 오류 시정 작업의 결과로 현재 25개국, 58개 언론매체, 59개 지도·백과사전 제작사, 27개 관광안내책자 및 교과서 제작사 등이 동해 병기로 바꿨거나 바꾸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동해를 단독 표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민간단체의 외로운 싸움에 찬물”

▽민간단체와 학계의 비판=동해 표기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 온 민간단체와 학계는 노 대통령의 이 언급에 대해 “정부를 대신해 동해 알리기에 발 벗고 나섰던 민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1999년부터 동해 지명 찾기 운동 등 ‘사이버 독립운동’을 벌여 온 반크(VANK)의 박기태 대표는 “대통령의 발언은 동해 표기의 정당성 주장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며 “일본이 일본해 명칭 표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크는 2000년 일본해만 쓰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동해 병기로 돌아서도록 한 것을 비롯해 ‘월드아틀라스’, 대규모 검색엔진인 ‘라이코스’(2000년), 세계 최대의 배낭여행 사이트인 ‘론리 플래닛’(2001년) 등을 설득해 동해 병기를 이끌어 냈다.

학계에서는 동해는 독도 영유권과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 등 영토 문제와 관련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성급하게 동해의 명칭 변경을 제안한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동해 명칭을 중립적인 개념인 ‘평화의 바다’ 등으로 변경하게 되면 독도 문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해도 국가원수가 이 같은 사안을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제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대통령이 준비 없이 마구잡이로 나오는 대로 발언하는 게 문제라는 사실이 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이상열 민주당 대변인은 “민감한 외교적 역사적 문제에 대해 사회 합의나 국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일로 국민 정서는 물론 국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동해를 포기하고 ‘평화의 바다’라고 부르자고 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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