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판 깼다는 비난 덮어쓸라” 6자회담 재개 수용 선회

  • 입력 2006년 12월 1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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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9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열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9월 19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열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이 지난달 말 북한에 제안했던 영변 5MW 원자로 동결 등 6자회담 ‘초기 이행조치’에 대한 북한의 확답을 듣지 않고 회담 재개에 동의한 것은 회담을 거부할 경우 회담 재개 무산에 대한 비난을 뒤집어 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18일 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대북 금융제재 조기 해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철회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이 핵 활동 동결 등 초기 이행조치를 요구하면서 북-미 간에 갈등이 불거질 경우 회담이 또다시 장기간 공전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등에서는 북한이 초기 이행조치 중 일부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회담이 진전을 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의 선회 배경=미국은 그동안 “6자회담을 재개하기 전에 핵 시설 및 활동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에 대한 북한의 사전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왔으나 결국 이를 더는 고집하지 않고 회담 재개에 동의했다.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북한이 회담을 하겠다고 하니 일단 열어보자’고 촉구하고 나서자 미국으로선 이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 내년 1월 출범하는 민주당 주도의 의회로부터 ‘북한과 직접 협상하라’고 압박을 당하면 어차피 ‘사전 보장이 없는 회담’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핵심은 회담 재개 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이며 미국은 새로운 제안을 할 계획이 없다”며 “회담 재개 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열리게 된다는 점에서 회담 전망은 밝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선 미국이 지난주 뉴욕의 북-미 채널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감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핵 폐기를 전제로 평화협정 체결 추진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혔듯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국면전환의 계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있다.

▽6자회담 쟁점 및 전망=한국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초기 이행조치에 대해 북한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6자회담에 나와 논의하자고 나선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명시적으로 초기 이행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으나 협상을 할 자세는 돼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중국과 함께 미국을 설득해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초기 이행조치의 수준을 조절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은 지난달 말 북한, 미국과의 베이징(北京) 회동에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초기 이행조치 중 일부만 먼저 추진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지 않고 일부를 먼저 추진하겠다는 의사만 밝히더라도 회담의 동력은 살려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말이 아닌 행동이 수반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한국과 미국의 일관된 자세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6자회담이 열리게 되면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회담을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며 “말 이상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 역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 등의 대가를 행동으로 취할 것을 요구할 것이 확실해 이를 한국과 미국 등 다른 회담 참가국들이 수용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양측이 모두 주고받는 것을 등가(等價)라고 판단해야지만 합의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 후 구성될 워킹그룹에서 논의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문제에 집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 문제의 조기 해결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지 해결을 먼저 약속할 수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로 북한과 미국이 부딪치게 될 경우 비핵화를 논의하는 6자회담 본회의가 영향을 받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회담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 일본은 6자회담 본회의와 워킹그룹 논의를 분리해 운영하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며 핵군축 회담을 하자고 요구할 경우에도 다른 참가국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을 전망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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