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새판짜기 꿈… 막내린 100년정당 꿈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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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열린우리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고개 숙인 열린우리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활짝 웃는 한나라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김형오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26일 재·보선에서 승리한 김호복 충주시장 당선자(왼쪽)와 이원복 인천 남동을 국회의원 당선자(오른쪽)를 축하하며 악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활짝 웃는 한나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김형오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26일 재·보선에서 승리한 김호복 충주시장 당선자(왼쪽)와 이원복 인천 남동을 국회의원 당선자(오른쪽)를 축하하며 악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열린우리당의 10·25 재·보궐선거 완패가 확인된 26일 김근태 의장은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이겠다”면서 “평화번영세력의 대결집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치권 ‘새판 짜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소속 의원이나 당직자들도 “당이 파산(破産) 선고를 받았다”며 정계개편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100년 가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가 창당 3년 만에 간판을 내릴 처지에 놓이게 된 데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정치공학적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근태, 깃발 올리나=김 의장은 이미 재·보선 전에 ‘창당실패론’을 언급했다. 이날 그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열린우리당은 물론 어떤 정당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의 정당 구조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 의장을 중심으로 한 재야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는 이날 오전 비공개 회동에서 정계개편에 대비한 행동을 서두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이젠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추진하는 정계개편이 얼마나 추동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정동영 전 의장은 “지금 지도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역시 ‘창당실패론’을 거론한 바 있는 정 전 의장도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 국면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초선들 “조기 전당대회하자”=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 회원 23명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내년 2월 말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늦어도 1월 이내로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 지도부가 전당대회까지 비대위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11월까지 전당대회 등 정치일정 준비를 차질 없이 완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도부를 교체한다 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니 전당대회를 열어 문제들을 털어 놓고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것.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각각이다.

‘처음처럼’의 조정식 의원은 “전당대회는 열린우리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대선을 위한 세력 규합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병도 의원은 “큰 틀에서 통합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친노 직계도 통합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는 상황이다. 통합을 전당대회를 통해 질서 있게 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전병헌 의원은 “지금은 열린우리당에 실망하고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국민에게 새로운 집권 희망을 보여 줘야 한다”며 “비전의 틀을 새롭게 짜서 새 당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헤쳐 모여’ 신당 창당이 해법이라는 얘기다.

염동연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사망 직전이다. 재창당은 맞지 않다. 통합의 절차를 밟는 의미에서의 전당대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역구도 강화는 반대”=노무현 대통령은 재·보선 결과 및 여당발(發) 정계개편 논의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988년 이래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해 오면서 일관되게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 왔기 때문에 지역적인 분할구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데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호남 민심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에는 반대한다는 뜻이다.

당 일각에선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한나라“與판흔들기 시도는 꼼수”

한나라당은 26일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에서 정계개편 목소리가 불거지자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여당이 인위적으로 정치판을 흔들 경우 현재의 대선구도에 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소속 대권주자들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열린우리당 주자들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현 상황을 의식하는 것.

당직자들은 이날 일제히 열린우리당의 자숙을 촉구하면서 정계개편을 ‘꼼수’ ‘수작’ 등으로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를 북한 핵실험과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한 것도 정국의 초점이 정계개편으로 쏠리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을 하려는 턱도 없는 수작을 한다든지, 판 흔들기를 위한 공작적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에게서 영원히 버림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기준 대변인은 “40 대 0의 전무후무한 재·보선 스코어를 기록한 여당에 이번 선거는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며 “여당은 정계개편과 같은 꼼수를 부리지 말고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호남에서의 ‘선전’에 사의를 표하는 등 호남 다가서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당선 여부를 떠나 평균 8.2%의 지지를 보내 주면서 한나라당의 손을 잡아 주신 호남 선거구민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더욱 노력해 호남의 마음을 여는 정책을 일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체면 구긴 韓대표… 지역구 신안서 연패

‘불안한 수성, 절반의 성공.’

민주당은 전남 해남-진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겨 의석 12석을 유지하며 정계개편의 추동력을 더하긴 했지만 전남 화순군수, 신안군수를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다. 지역 민심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신안의 경우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한화갑(사진) 대표의 지역구란 점에서 ‘리틀 DJ’를 자임하는 한 대표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한 대표는 5·31지방선거 때도 지역구인 신안과 무안 두 곳 모두 자신이 공천한 군수 후보가 낙선한 바 있어 연패 기록도 세웠다.

이에 따라 한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지도부 책임론이 다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선거 패배가 후보 공천 과정에서부터 충분히 예견돼 왔다는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신안군수 선거의 경우 당초 결정된 후보를 재심에서 번복하면서 후보가 교체됐고, 화순군수 후보 공천 과정도 주류와 비주류 간에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한 의원은 “지도부가 너무 자만에 빠졌다는 민의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고,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화순과 신안의 공천은 패배를 자초한 공천이었다” “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한 대표가 DJ의 햇볕정책 계승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리더십 상실과 입지 축소를 자초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한 대표는 이날 “전쟁에선 이겼는데 국지전에선 졌다”고 평가했다. 한 대표는 “민주당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정당보다 인물을 선호한 결과”라고 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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