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효]이젠 北 돌발사태 관리 나설 때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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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지금 북한의 핵실험 여부를 놓고 그야말로 불난 호떡집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가족끼리 모여 앉아 한가위 상을 차려 놓고 덕담을 주고받는 대신 불안한 정세를 지켜봐야 했다. 북한 핵문제는 도대체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더 한국에 두통거리가 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진행 상황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필연인가, 아니면 한국 스스로가 자초한 외교 실패의 산물인가.

북한 사회를 다스리는 군부정권의 지상과업은 자신의 정권을 지키는 일이다. 정권을 지탱하기 위한 결속물이 곧 핵무장이며, 따라서 그들에게 핵은 국제사회의 어떠한 보상책과도 맞바꿀 수 없는 생명줄임을 직시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을 우선 지적해야 한다.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와 지난해 9월 19일의 6자공동성명은 북한이 건국 이후 줄기차게 추진해 온 핵 보유 정책의 와중에 일시적으로 보인 유화적 타협책에 불과할 뿐, 북한은 1962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치한 이래 단 하루도 핵 프로그램을 중단한 일이 없다.

북한의 가문통치가 빚은 주체사상은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철저한 배타성을 근거로 한다. 시대착오적인 경제구조를 타파하려면 체제를 개방해야 하지만 정권안보에 추호도 위험요인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집착이 핵무기에 대한 집착을 풀지 못하게 한다. 잔인한 수준의 빈곤과 탄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이 세계의 눈에는 불가사의한 현실일지라도 북한의 소수 권력계층으로서는 그다지 두려워해야 할 부담은 아니다. 한국의 햇볕정책 추진가들은 이런 상대를 놓고 군사문제는 경제지원으로 풀어야 한다며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돈과 물자를 지원해 왔다.

북한에 핵 프로그램이 있다는 주장은 조작설일 수 있으니 검증돼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적이 있다. 지난해 2월 당사자인 북한 자신이 이미 핵보유국임을 선언하자 이번에는 협상의 값어치를 올리기 위한 방어 전략이라며 대북 포용이 오히려 강화돼야 타협의 길이 열린다는 주장이 공론화됐다. 이런 인식은 우리 지도자와 정부의 주도하에 국민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협약을 맺고 지원해 주면 북한은 시간을 벌고 핵무장을 진전시켜 온 12년의 악순환 고리가 이제 그 마지막 파국에 이르려 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이제는 전쟁부터 막아야 하니 계속 평양을 달래고 지원해야 한다고 할 것인가.

북한 핵문제는 진작부터 해결할 수 있는 협상의 사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 외교는 북한 정권이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태도라도 바꿀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종국에는 북한 정권이 억지로라도 선택을 바꾸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경제교류도 이러한 전략목표에 충실했어야 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집착은 국제사회의 어떠한 외교적 노력도 무산시킬 만큼 무모하지만 한국 정부의 그릇된 대응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고 결과적으로는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축소시켰다. 현재의 북한 지도부는 정권 붕괴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핵무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 외교의 목표는 북핵 해결이 아니라 북한 문제로 인한 돌발 사태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주에 일본(9일), 중국(13일)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서 북한의 태도가 바뀔 리 만무하다. 모든 나라가 ‘북핵 불용’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에 맞도록 조금씩 서로 다른 북한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돼 한미동맹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사태를 막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며, 일본은 북한 문제를 계기로 자위대의 역할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미국은 전쟁을 제외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북한을 고립시키려 하되 최후의 해결책은 중국과의 담판을 통해 찾을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지켜줄 자는 곧 우리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뜻에 맞게 필요한 시점에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결국 미국이다. 민족공조와 자주국방의 주술에서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는 것만이 지금부터의 본격적인 북한 문제를 헤쳐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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