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감사한다던 盧대통령 요즘 왜?…돌연 냉랭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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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없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는가.”(2003년 3월 4일 KBS 창립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요즘 방송사 이기주의 또는 직원 이기주의, 노동조합 이기주의가 중심이 돼 있는데 거기에 대해 마땅한 통제 수단이 없다.”(2006년 7월 14일 3기 방송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방송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가 싸늘해지고 있다. 취임 초 방송을 향한 ‘찬사’가 3년여 만에 ‘조직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직격탄으로 바뀐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비판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방송 보도에 대해 “편파 왜곡보도”(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라고 비판했다. 사석에선 “요즘 방송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특히 노 대통령은 방송사와 방송노조, 방송위원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발언을 통해 겨냥한 것은 △한미FTA를 비판하는 방송 보도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방송 노조(KBS)의 반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지상파의 제동 걸기 등으로 요약된다. 방송에 대한 총체적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레임덕(임기 후반 권력 누수)인가?=방송과 정권의 갈등에 대해 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과 연결 짓는 관측이 많다. 정권과 방송이 맞부닥치는 최전선이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 역점 과제인 한미FTA라는 사실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 준다.

실제로 한미FTA 관련 방송 보도는 현 정부 출범 초 이라크 파병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라는 게 방송계의 평가다.

2003년 10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언론노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KBS 9시 뉴스의 경우 파병 관련 보도 8개 중 7개가 찬성을 전제로 보도했다”고 지적됐다. 또 2004년 7월 언론개혁국민행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김선일 씨 피살사건 관련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보도 분석 결과에 따르면, 325건(6월 21일부터 6일간) 중 김 씨의 사망과 직결된 이라크 추가파병 보도는 21건이었으나 비판적인 내용은 한 건도 없었다는 것. 한미FTA 관련 보도와는 천양지차인 셈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은 “보도 내용과 사안의 문제이지 레임덕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고,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레임덕 탓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방송이 무소불위의 공룡으로 커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KBS, MBC=노 대통령의 방송 비판은 이 홍보수석비서관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KBS, MBC의 한미FTA 관련 보도를 강도 높게 비난한 뒤에 나왔다. 김 처장은 4일 “한미FTA 관련 기획보도를 보면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6월 4일 방영된 ‘KBS 스페셜’의 한미FTA 보도에 대해 “제작자의 정치적 관점을 과도하게 반영했다”고 비판했다. MBC ‘PD수첩’에 대해서도 4일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횡포에 가까운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 국내 홍보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MBC PD수첩은 18일 한미FTA에 대한 두 번째 기획 보도를 통해 재반론을 펼칠 예정이어서 갈등은 증폭될 전망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반발하는 방송 노조=노 대통령은 14일 방송위원 임명장 수여 자리에서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민주주의 사회에 맞게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방송위 노조가 새 위원들에 대해 “정실인사 보은인사 청와대를 규탄한다” “정치권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과 방송 사업자에 대한 중립성을 상실케 한 사상 최악의 인사”라고 비판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대통령과 방송사 노조와의 갈등은 임기가 끝난 정연주 KBS 사장의 연임 반대 투쟁을 통해 이미 표면화된 상태다.

▽방송통신 융합과 지상파 이기주의=노 대통령은 “사회 현실은 방송과 통신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국가 제도는 2가지로 나뉘어 있는 것이 현실에 안 맞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시각도 지상파들이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서도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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