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시험발사 왜 시간 끄나

  • 입력 2006년 6월 20일 03시 01분


북한이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의 대포동 2호 또는 대포동 2호 개량형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고도 시험 발사를 하지 않자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상 악화=지난주 한국과 미국, 일본 정부는 이르면 18일 미사일이 발사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자 한국 정부 일각에선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는 무수단리 지역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등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미사일이 예정된 경로를 거쳐 목표한 지점으로 날아가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레이더가 구름의 방해를 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정부 당국자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미사일 발사엔 지장이 없으나 미사일의 궤적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을 우려가 있어 발사를 미루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부족=북한이 미사일을 목표한 지점까지 보낼 자신감이 없어 시간을 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 시험 발사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은 당시 인공위성을 대기권 밖 지구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발사라고 주장했으나 미국 등이 탐지한 결과 지구궤도에서 북한의 인공위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거리가 대포동 1호 미사일에 비해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 가까이 되는 대포동 2호 또는 대포동 2호 개량형 미사일의 발사를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

또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이 미국이나 일본에 의해 요격당할 우려 때문에 발사를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으로선 국제사회에 ‘핵은 있지만 핵 운반능력이 없거나 모자란다’는 인식을 주게 되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핵 보유를 지렛대로 6자회담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치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려는 전략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력 행사=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달 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중지토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도 13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에게 전화로 비슷한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사일 발사 지연이 미국의 요청을 받은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협상용=한국과 일본 정부 내에는 북한이 미국의 ‘당근’ 제시를 기대하며 시험 발사를 유예 또는 취소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안보 관련 부처 관계자는 19일 “북한은 정말 미사일을 발사할 것처럼 끝까지 밀어붙여서 금융제재 문제 논의 등을 위한 미국과의 양자협의를 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이날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협상 기회를 확보해 금융 제재를 풀기 위한 것이라는 일본 정부 일각의 분석을 소개했다.

실제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한 데 이어 1999년 대포동 2호 발사를 추진하는 카드로 당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부시 행정부는 1999년 당시의 미국 민주당 정부와 다르다”며 “미사일 발사는 곧 미국의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한미일 ‘北미사일 접근법’ 뚜렷한 온도차▼

북한의 대포동 2호 또는 대포동 2호 개량형 미사일의 발사 움직임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2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 3국이 ‘북핵 불용(不容)’이라며 탄탄한 공조체제를 과시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초읽기’ vs ‘지속적 관찰’=미일 당국은 “미사일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같다”며 발사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와 대북 경제제재 조치 등 강경 대응책을 거론하고 있다.

일부 외신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일 당국이 곧바로 요격할 것이라는 군사적 방안까지 보도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속적 관찰’을 내세우며 신중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북한이 발사 준비 중인 것이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우주발사체(SLV·Space Launch Vehicle)인지, 미사일인지의 실체는 물론이고 준비상황과 발사 예상시점 등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는 것. 정부 내에서 일부 외신의 미사일 관련 보도에 “신중하지 못한 추측성 보도”라는 불만까지 나온다.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이 외견상 SLV 또는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은 ‘발사 준비다, 아니다’라고 예단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추진체에 액체 연료를 주입해 발사가 임박했다는 국내외의 관측에 대해서도 정부는 ‘연료는 언제든지 다시 뽑아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응 기류에선 한국과 미일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미일은 ‘자위조치’ 등 군사 안보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정치 외교적 해법을 모색 중이다.

▽입장 차이는 왜?=전문가들은 우선 핵과 미사일의 본질적 차이에 주목한다.

핵의 존재는 3국이 놓인 지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동 대응이 가능하지만 미사일은 유효사거리와 잠재적인 타깃이 되느냐에 따라 3국에 미치는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1998년 발사된 대포동 1호 미사일의 유효사거리에 들어간 일본은 당시 극도의 공황에 빠졌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가장 큰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미국도 처음으로 자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의 발사 조짐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내심 북한의 미사일이 서로 접해 있는 한국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분위기다.

발사 후 대응에 대해서도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대북 제재로 잃을 것이 없지만 한국은 잃을 것이 많다”며 “개성공단을 비롯한 3대 남북경협사업의 차질은 물론 정정불안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 철수사태가 벌어지면 국익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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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미사일은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 없어▼

탈냉전 이후 대량살상무기(WMD) 못지않게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한 것이 WMD 운반수단인 미사일의 확산이다.

핵을 비롯한 생화학무기의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생물무기금지협약(BWC), 특정재래식무기사용금지협약(CWC) 등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제규범이 존재하지만 미사일에는 그 같은 국제규범이 없다.

미사일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규정으로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와 ‘탄도미사일 확산방지를 위한 헤이그지침(HCOC)’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사일 폐기문제가 아닌 기술이전을 통제하기 위한 신사협정이나 선언적인 신뢰구축조치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사일에 관한 국제규범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각국이 미사일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대포동 2호처럼 WMD를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확산 규제를 중시한다. 반면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이란 등은 인접국가의 초단거리 미사일도 중대한 위협이 되므로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규제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미사일이 무기가 아닌, 우주개발에 필요한 로켓이나 항공기 제작기술과 긴밀히 연관된 ‘이중용도(dual use)’를 가진다는 점도 국제규범 제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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