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부터 비리단체장 리콜 가능…6개법안 강행처리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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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항의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 주변 단상을 가로막은 가운데 주민소환법 등 6개 법안을 일방 처리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뒤늦은 항의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 주변 단상을 가로막은 가운데 주민소환법 등 6개 법안을 일방 처리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3당이 공조해 2일 국회에서 통과시킨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은 1995년 도입된 현재의 지방자치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한 법안이지만 국회에서 갑자기 일방 처리된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통과된 다른 법안들도 과연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해야 할 만큼 촌각을 다투는 ‘민생’법안이었는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유권자 16.7%가 찬성하면 해당 단체장은 퇴출=주민소환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유권자 10%,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은 각각 15%, 20% 이상의 주민이 찬성하면 소환 투표 실시가 가능하다. 또한 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이면 즉각 직을 상실하게 된다.

민생법안 강행처리 현장 화보

사실상 재신임 투표나 마찬가지여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의 위법·부당한 사무처리나 직권남용 행위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가 만들어진 셈. 주민소환법은 단체장과 지방의원(비례의원 제외)이 선출된 지 1년이 지나야 소환 청구 대상이 되기 때문에 내년 7월부터 실질적인 효력이 발생한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 부패권력 심판론’을 이슈화하기 위해 이 법안을 추진했지만 내부적으로 대중영합주의에 의한 제도 남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과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1일 이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기로 했으나 ‘공조 파트너’인 민주노동당의 요구로 2일 이 법안을 급하게 직권상정에 추가했다.

▽기타 4개 법안=동북아역사재단 설립 및 운영법안은 독도 문제와 주변국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관청을 설립하는 게 골자다. 국사편찬위원회, 고구려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여러 정부 산하 관련 연구기관과 업무가 겹쳐 별도의 관청을 꼭 설립해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법안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3·30 부동산 대책의 핵심 법안. 재건축 개발이익에 최고 50%의 개발부담금을 부과해 재건축에 의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이나 이미 예상부담금이 집값에 전가돼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안은 정부가 지정한 조세회피지역을 거쳐 들어오는 외국계 펀드의 투자 차익을 원천징수하는 내용. 미국계 사모(私募)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논란이 불거진 뒤 여야 간에 이견은 없었다.

주민소환법 내용과 도입 찬반론
찬성 주장주요 내용반대 주장
―선출직 공직자에게 계속적인 책임감 부여
―공직자가 특수이해관계 보다 지역사회 전체 이익을 추구하도록 함
―지역 행정에 대한 주민 관심 제고
―부정부패 예방 기능
―광역단체장은 유권자 10%, 기초단체장은 유권자 15%, 지역구 지방의원은 20% 이상 유권자가 서명할 경우 주민소환투표 실시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 투표자 과반 찬성 시 해당 선출직 공직자 사퇴
―임기 시작 1년 이내거나 퇴임 전 1년 미만인 때, 또는 지난 주민소환투표로부터 1년 이내에는 주민소환투표 청구 불가
―책임 행정보다는 단기적·인기영합적 행정 초래
―공직 진출 기피현상 초래
―지역사회 분열 유발
―행정적 낭비, 정치적 혼란 등 효과에 비해 비용이 지나치게 큼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열린우리 “올인” 26분 만에 일사천리 강행▼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 민주노동당과의 공조, 국회 본회의 6개 안건 26분 44초 만에 강행 처리….

열린우리당이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3·30 부동산대책 관련법 등의 처리에 ‘다걸기(올인)’한 이유는 뭘까.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목전에 닥친 5·31지방선거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재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바닥세다. 어차피 열세인 상황에서는 판을 흔들어야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이번 강행 처리 법안에는 국민과 지지층의 관심이 많은 부동산 관련 입법이 포함됐다. 열린우리당은 이를 ‘민생개혁법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민생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당 대 당’ 구도인 선거판을 ‘개혁 대 반(反)개혁’으로 반전시키고 흩어졌던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을 옹호하려 물리력까지 동원하는 한나라당이 기득권 옹호, 반개혁세력으로 비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사립학교법 강행 처리의 경험이 학습효과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학법 강행 통과 직후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소폭이지만 올라갔다.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듯하다. 정동영(鄭東泳) 열린우리당 의장은 본회의 산회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힘 있는 여당의 모습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양보 권고’에 대한 거부로 빚어진 최근의 당-청 갈등이나 국회에서 야당과 극한 대치 상황을 이끌어 낸 것은 ‘고도의 정치게임’에서 비롯됐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한나라 “어… 어…” 작년 사학법 처리 때와 같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침까지 민주당은 본회의 표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2일 오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것을 신호로 열린우리당이 6개 법안 처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당황해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날 ‘결전’에 임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이 오전 내내 민주당과 대화하는 것을 감지했으면서도 한나라당은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에 반대한다는 전날 민주당의 발표만 믿고 다른 대응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이 지난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민주당, 민주노동당의 도움으로 강행처리할 때 맥없이 당했던 전철을 어김없이 되밟은 것이다. 겉으로는 단호한 것처럼 보였으나 전략 부재, 안일함 등은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었다.

가장 효과적인 저지 방법인 본회의장 점거는 ‘문을 안 열어줘서’라는 이유로 시도조차 못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먼저 들어간 뒤 따라 들어가 속절없이 당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략과 지도력 부재 외에 의원 개개인의 태도도 문제였다”며 “전투대열로 지키고 선 여당 의원들 앞에 우리는 상갓집 문상객 같은 자세였다”고 토로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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