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덕룡]납북자 문제, 통일독일에서 배우자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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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전 서독 정부는 분단 이후 분단의 고통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주민들을 위해 두 가지 인도적 사업을 추진하였다. 하나는 정치범 석방을 위한 지불거래(Freikauf)였고, 다른 하나는 이산가족 재결합 프로그램이었다. 서독으로서는 동독 주민들의 인권이나 이산가족의 안타까움을 두고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동독에 경제 지원을 하는 대신 이들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은 1963년에 시작되어 1990년 통일되던 해까지 지속되었다. 이를 통해 서독으로 석방된 정치범은 모두 3만3755명, 재결합이 이루어진 가족은 25만 명가량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송환받는 대신 북한에 사회간접자본 투자, 공장 건립, 현물 제공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적 한계 때문이긴 하지만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대로 대책을 추진하지 못한 것은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1000여 명에 이르는 이들 중 상당수가 70대 이상의 고령에 접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이들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강구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염려되는 것은 이로 인한 국론의 분열이다. 얼마의 대가를 어떤 형식으로 제공하며, 어떤 기준에 입각하여 송환 대상자를 결정하는가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사업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염려하여 아예 이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였고, 통일 이후에도 공식적인 자료를 발표한 적이 없다. 통일 이후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사업 내용이 단편적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인권 문제가 정치쟁점화하지 않도록 조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서독의 경우와 같이 세부 사안들을 정부에 일임하여 이 사업의 정치화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사업의 적정성 여부는 국회를 통해 얼마든지 비공개로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도 주의해야 할 원칙들은 있다. 첫째, 대북 현금 지급은 곤란하다. 정치적 인신매매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아직 북한의 핵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금이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국제적으로도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대가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형식이 필요하다. 북한은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 식량 부족, 생산설비와 원자재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빈곤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하는 지원은 국내외의 공감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북한 정부도 참여하기 쉽도록 사업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송환되는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남한 사회에서 송환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반북 정서를 만들거나 국제적인 비난의 빌미를 만들면 안 된다. 북한이 인권 차원에서 참여하는 모양새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의 심화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소해야 할 숙제이다. 그리고 1000여 주민이 분단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삶의 문제’이다. 사회적 협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통일 역량을 보이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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