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욱]‘이산가족 눈물’을 볼모 삼다니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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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백과사전은 언론에 대해 ‘김일성의 교시와 김정일의 방침을 해설 선전하고 옹호 관철하는 한편 인민들의 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는 데 복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이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는 차원에서 남한의 자유주의 언론관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남북 접촉에 나서는 북한 당국자들이 마르크스 레닌식의 언론관을 대남 언론에도 적용하는 무리수를 둔 지는 오래다. 북측은 그간 특정 언론을 배제하고 구미에 맞는 언론만을 선별해 상대한다든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삭제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등 남한의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북한은 제13차 이산가족상봉을 취재하는 남한의 언론에 대해 ‘납북과 나포’라는 용어를 문제 삼아 취재차량에 무단 침입하고 취재 기사와 녹화테이프를 탈취하는 등 초유의 불법 행위를 자행했다. 북측의 취재 방해와 위협으로 공동취재단이 금강산에서 전원 철수하는 사태에 이르는 등 남측 기자단과 북측 당국 간에 언론 자유를 둘러싸고 심각한 충돌이 벌어졌다.

공동취재단이 북측의 취재 위협 및 방해로 전원 철수한 것은 1971년 남북대화를 시작한 후 처음이다. 오죽했으면 취재를 생명으로 여기는 취재단이 전원 철수를 결정했을지 짐작이 간다. 특히 “30분 안에 안 나가면 공화국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초강경 발언까지 한 것은 남한 언론 길들이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특정 기자들을 배제함으로써 전체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는 북한의 복안으로 관측된다. 취재단으로서는 물리적 제재를 당하는 상황에서 취재를 계속한다는 것은 남한 언론의 굴욕이라고 판단했고, 전원 철수는 언론 자유를 사수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북측으로서는 ‘납북자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 방송사의 ‘납북과 나포’라는 단어 사용에 거부감이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납북과 나포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특히 불만이나 이의 제기가 당국 간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물리적 취재 방해와 위협으로 표면화되면 남북 대화에 밝은 미래는 없다. 나아가 노인 150여 분의 ‘눈물’을 10시간 이상 볼모로 삼아 이산가족들에게 불안감과 초조감을 안겨 준 것은 행사 취지에도 맞지 않다.

그간 남측은 식량과 비료를 인도적 차원에서 북측이 희망하는 시기에 차질 없이 전달하고 있다. 정부는 식량 지원이 군량미로 전환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동포의 배고픔을 달랜다는 휴머니즘 정신으로 연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이산가족상봉과 같은 인도주의 행사를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취재 방해에 나선다면 남측 여론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북측은 인식하여야 한다. 북측은 자신들의 돌발 행동이 참여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상황도 이해해야 한다.

정부는 북측에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남한 기자들이 잘못했다는 뜻인지, 북측의 행동이 유감이란 것인지 분명치 않다. 사과 요구 및 재발 방지 촉구를 해야 할 일이다. 취재단도 철수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 당국이 인도주의와 대화 교류의 장에서 취재 자유가 보장되는 가시적 조치를 이끌어 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결국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 취재 기회의 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상대 지역에서 취재 자유를 보장한 기존 남북합의를 실효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취재 보도의 틀을 새로 짜는 언론 협상이 필요하다. 언론의 취재 보장 여부는 남북한 신뢰 회복의 바로미터인 만큼 남북 당국은 구체적인 취재 자유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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