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사퇴]盧대통령-鄭의장 회동 안팎

  • 입력 2006년 3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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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5시간여 만인 14일 오후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을 만나 총리 사의(辭意)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정 의장의 건의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 총리와의 별도 회동에서는 사의 표명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 의장에게 힘을 실어 준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에 내리자마자 정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동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만을 배석시킨 가운데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는 등 형식에서부터 정 의장을 배려했다.

정 의장 측은 이날 회동의 ‘성과’가 실제로 정 의장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정 의장이 대통령에게 “국민의 대지 위에 따뜻한 봄 햇살을 비추고 입을 맞춰야 한다”고 했고 충고로 들릴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노 대통령은 “깊이 있게 경청했다”고 말했다고 우상호(禹相虎) 열린우리당 대변인이 전했다.

정 의장의 한 측근은 “회동에서 이 총리 퇴진 문제가 일사천리로 풀린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결심이 서지 않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 정 의장이 강하고 분명하게 하니까 노 대통령이 경청하다 ‘맞다. 오케이’라고 해서 ‘사의 수용’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 단순히 이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한 대화만 오간 것 같지는 않다. 후임 총리 인선 문제와 지방선거 전략 등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밀도 있는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후임 총리 인선에 대해서 정 의장은 “이 총리는 국정의 절반을 책임지고 운영하던 사람이다. 다음 총리를 정하는 게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이 고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게가 실린 데 비례해 앞으로 여권에서 정 의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을 수밖에 없다. 정 의장은 당장 5월 지방선거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노 대통령이 정 의장의 의사를 전적으로 수용한 만큼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청와대는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회동을 통해 정 의장을 의식적으로 띄워줌으로써 책임도 동시에 부여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의 퇴진이 정 의장의 강한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정 의장 측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은 귀국하기 전인 12일경 이미 이 총리의 퇴진을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일요일(12일) 오후 청와대가 대학교수 등을 상대로 후임 총리 인선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총리의 퇴진이 기본적으로 여론의 압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을 촉발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청와대 측은 일축하고 있다.

한편 정 의장은 이날 청와대 회동 후 이 총리에게 위로 전화를 했으며, 이에 이 총리는 “후련하다.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고 정 의장은 전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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