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태명]‘민심 얻기’에 치우친 전자정부 사업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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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전자정부 사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행정자치부의 인터넷 민원서류 변조 가능성이 드러난 데 이어 대법원의 인터넷 등기부등본의 위변조 가능성이 제기됐다. 신뢰가 최우선인 전자정부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민원서류의 원본까지 위변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안심은 되지만 복사본 위변조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엄청날 수 있다.

전자정부 사업은 국민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시작됐다. 등기부 등본의 인터넷 발급이 중단된 후 법원을 방문한 민원인이 한참을 기다렸다는 사실에서 보듯 전자정부 사업은 그동안 국민의 시간을 적잖게 절약해 준 게 사실이다. 이사할 때 해야 했던 퇴거신고, 전입신고, 자동차이전신고, 민방위신고 등의 여러 절차가 단 한 번의 이전 신고로 통합됐다.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달 업무를 인터넷을 통해 시행함으로써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체제가 가능해졌다. 이 외에도 정부의 사업을 국민에게 알리고 의견을 듣는 노력도 전자정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자정부 사업이 효율성과 투명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하더라도 정보보안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 계속 항해할 수는 없다. 국민의 안전과 사회질서의 유지는 정부가 유보할 수 없는 첫 번째 의무이기 때문이다.

편리함과 보안성은 서로가 대척점에 있는 ‘시소’와 같아서 한쪽에 무게가 실리면 다른 한쪽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쉽게 드나들기 위해 대문을 열어 놓으면 도둑맞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용자를 확인하기 위해 인증절차를 강화한다면 사용자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에서의 서비스 제공도 제한적이 된다. 역으로 인증절차가 지나치게 간소화되면 정보보안의 취약성은 증가한다. 위험성이 커지면 국민의 입장에서 불안하기만 할 뿐 결코 편리하지 않다. 편리함과 보안성은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전자정부가 잘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건축’ 도중에 생긴 작은 사고로 이해하거나 변명하기보다는 겸허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전반적인 정보보호체계를 재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서비스 일변도의 전자정부 사업 방향에 정보보안을 강화하는 보완적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정부 전체 정보화 예산의 10.6%를 보안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전체 정보화 예산의 5%에도 못 미치는 한국 정부의 정보보안 투자는 아무래도 ‘민심 얻기’에만 치우쳤다는 인상을 갖게 만든다. 인터넷 대민 업무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기술개발과 전문가 양성이 물론 포함되어야 한다. 또 기술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보안관리 대책과 제도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인터넷 사용자들도 정보보안이 정부만의 의무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편리함만 강조하다 보면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가 모든 것을 지켜 줄 것으로 믿기보다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보안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축적할 필요도 있다. 힘들게 형성한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지 않으려면 사용자가 먼저 ‘파수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자정부는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 교두보이기도 하다. 국민과 정부가 함께 시소의 조화와 균형을 찾을 수 있다면 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쓰디쓴 명약’이 될 것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정보통신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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