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임기단축-2선후퇴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다”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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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조건부 조기 사임’과 2선 후퇴 발언 등에 대해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학자들은 대통령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거나 주요 권한을 총리 등에게 넘기는 것은 명백히 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한다.

또 임기 단축은 위헌 여부를 떠나 임기 동안 국정을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믿고 뽑아 준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에서 정치적 도덕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대통령의 권한 축소는 위헌”=숭실대 법학과 강경근(姜慶根·헌법학) 교수는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것이지 스스로 창출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대통령이 권한을 스스로 자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야당에 넘겨주겠다는 것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각료나 총리를 야당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대 장영수(張永洙) 교수도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에게서 위임을 받은 것이므로 임의대로 처분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정종섭(鄭宗燮) 교수는 “노 대통령의 ‘2선 후퇴’ 발언이 국정운영에서 총리의 역할을 높이겠다는 뜻이면 문제가 없지만 국방권 외교권 등 대통령의 의무를 포기한다면 직무유기며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평안감사도 싫으면 그만”=조기 사임이나 임기 단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연세대 법대 김종철(金鐘鐵) 교수는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조기 사임할 수 없다는 주장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유를 하자면 평안감사도 하기 싫으면 안 한다고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도 대통령이기 이전에 자유를 가진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정종섭 교수는 “공직에서 탈퇴하는 것은 기본권 행사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임기 단축 발언에서 위헌적인 요소는 없다”고 말했다. ‘조건부 조기 사임’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조건은 정치적인 의사표현일 뿐 위헌 여부를 따지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화여대 법대 김문현(金文顯) 교수는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으로 정해져 있는 만큼 임기와 권한 축소는 현행 헌법하에서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도덕적 비판 피하기 어렵다”=그러나 헌법학자들은 노 대통령이 조기 사임을 강행한다면 이는 5년간 권력을 맡긴 국민의 의사를 저버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도덕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영수 교수는 “대통령은 한 개인이 아니라 자신을 선출해 준 국민이 있고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법대 임지봉(林智奉) 교수는 “5년의 임기는 권리인 동시에 간접적인 의무”라고 말했다.

명지대 김철수(金哲洙·헌법학) 석좌교수는 “대통령이 대연정을 꼭 원한다면 의원내각제로 헌법을 개정하는 동시에 본인도 사임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총선을 실시해 국회에서 대통령을 새로 선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헌법관=노 대통령의 헌법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지난해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종종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5일 KBS 1TV를 통해 방영된 ‘참여정부 2년 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도 노 대통령은 당시 위헌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자신이 제기한 ‘연정론’에 대한 위헌 지적에 대해서도 “위헌이니 뭐니 하는 형식논리를 갖고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

연세대 법대 전광석(全光錫) 교수는 “대통령은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국정을 펼쳐 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그러나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는 무척 넓어서 국민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그렇게 깜짝 놀랄 만한 발상이 필요한 비정상적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낮고 국회에서 소수라고 해서 대통령 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대통령제의 기본 조건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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