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화판 공공 廳舍, 피땀 어린 국민 세금

  • 입력 2005년 5월 6일 2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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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수도 파리 시청은 1882년에 지은 청사를 내부만 개조하며 120년 넘게 쓰고 있다. 미국 중소도시의 시청 건물 중에는 군대 막사처럼 초라한 곳이 많다.

요즘 국내에서는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청사의 위세를 경쟁하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호화판 청사는 ‘관리는 존귀하고 백성은 비천하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으로 도배돼 있는 듯한 느낌이다. 크고 사치스러운 청사 어느 구석에도 국민이 힘겹게 낸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은 배어 있지 않은 듯하다.

경기 용인시는 1620억 원을 들여 연면적 1만4000평의 새 청사를 7월 완공한다. 건물을 다 채우려면 출장소와 읍면사무소에 나가 있는 직원들까지 불러들여야 할 판이다. 인천지법, 인천지방경찰청, 울산교육청 등은 새 청사로 이사하고도 옛 청사를 매각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청사 매각대금이 국고(國庫)로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재정 건전화가 국가적 현안임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새 청사들은 외형에만 치중하고 국민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아 민원인들이 으리으리한 청사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까지 한다. 지방재정과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들도 새 건물 신축경쟁에 끼어들고 있다니, 국민을 위한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그저 ‘한통속’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방도시에서 법원 검찰 청사와 경찰서는 번듯한 외관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교통범칙금 등을 받아 조성된 사법시설 특별회계로 법원 검찰 경찰은 너른 터에 호화로운 건물을 지었다. 이들 청사에 들어가면 건물만 보고도 기가 죽는다는 시민들이 있을 정도다.

국민은 세금과 준조세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은 21세기에도 공무원 공화국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키워드는 ‘개혁’이다. 호화판 청사 짓기 경쟁도 행정개혁에 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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