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독도사랑’ 이종학 선생이 그리운 날

  • 입력 2005년 2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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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島根) 현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날’로 정하자는 내용의 조례안을 23일 상정함으로써 한일 간에 독도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 와중에 2002년 76세를 일기로 숨진 사운 이종학(史芸 李鍾學) 선생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독도 문제에 지금보다 관심이 덜했던 1970년대부터 차분하게 ‘독도사랑’을 실천해 온 인물이다.

선생은 30여 년간 일본을 50여 차례 방문해 독도에 관한 지도 신문 잡지 관보 문헌 등을 억척스레 모았다. ‘독도’와 ‘조선해’가 표기된 18세기 지도를 본보(1977년 4월 22일자)에 처음 공개한 이후 무려 1300여 점을 모았다.

1997년 경북 울릉군에 문을 연 독도박물관은 그가 모은 자료 중 특히 사료 가치가 높은 532점을 씨앗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생전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데도 나름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일본 스스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한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관 이후 65만 명이 찾은 독도박물관을 둘러보면 “봐라, 일본 당신들이 스스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한 자료가 이렇게 많지 않느냐”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마네 현이 요즘 새삼스레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70년대부터 독도에 대한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였다.

선생은 1978년경 시마네 현의 관공서와 거리 곳곳에 ‘돌아오라, 다케시마’ ‘다케시마는 우리 영토’ 등이 새겨진 광고판이 등장하자 일일이 사진을 찍으며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유해는 경기 수원시 자택 부근의 납골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듬해 “독도에 가까운 곳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독도박물관 입구로 옮겨졌다.

그를 기리는 비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 국토의 막내 독도의 영유권 수호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이가 있으니 그 숭고한 행적은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독도 분쟁이 생길 때면 감정보다는 일본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실증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발로 뛴 사운 선생이 더욱 생각난다.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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