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출신 민주화 기여’ 결정엔 평가 유보

  • 입력 2004년 7월 30일 18시 48분


●발언에 담긴 뜻 뭘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 및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의 강제 전향 거부 행위를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한 데 대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30일 옳다 그르다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권리 침해는 철저히 견제되어야 한다”면서 의문사위 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法的 독립기구 존중하겠다"→의문사위 활동 사실상 신뢰?

노 대통령은 의문사위의 ‘민주화 기여’ 판단에 대해 “공권력의 불법 부당한 행사로 발생한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해 밝히는 게 중요하다”면서 직접적인 평가는 피했다.

대신 그 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이 조사대상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 규정의 문제로 논점을 돌린 셈이다. 즉, ‘민주화 기여’라고 판정한 것을 시비할 게 아니라, 어찌 됐든 국가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비전향 장기수가 억울하게 숨졌다는 사실을 가려낸 것에 의미를 두자는 얘기였다.

두 번째로는 의문사위는 법적으로 독립된 기구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간섭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노 대통령은 이날 보고를 받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면서 “여러분의 독립적인 권한 행사는 가급적 존중하는 자세로 보고를 받을 것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할 생각은 없다”고 미리 못 박았다.

물론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의문사위의 ‘민주화 기여’ 판단 부분에 대해선 “무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를 정면으로 제기해 의문사위를 궁지로 몰기보다는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권리 침해는 철저히 견제되고 방지돼야 한다”며 사실상 의문사위의 활동에 대해 신뢰를 보냈다.

여기에는 현 정부의 지지층을 반대 세력의 공세 때문에 내치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려도 깔려 있는 듯하다.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본다"→편가르기로 대결 유도하나

노 대통령은 의문사위의 ‘민주화 기여’ 판단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의문사위를 공격하는 측면도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한나라당이 의문사위 결정을 고리로 삼아 국가 정체성 공세를 펴고 있는 상황에서 뒤로 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이전에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내지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등 중요 현안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해 와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명쾌한 입장을 내놓아 매듭을 풀기보다는 ‘내 편, 네 편’이라는 대결적 틀로 접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사 진상규명 필요성 제기→野 정체성 공세에 정면대응

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과거사에 관한 전반적인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경계와 교훈으로 삼는 것은 수천년 인류사의 확고한 가치로 자리 잡은 것”이라며 “반민특위 해체 이래로 잘못된 역사 규명이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고,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과거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일제 하에 가려진 역사, 유신시대와 5, 6공화국 시대 등에서 밝혀지지 않은 공권력 부당 행사 등을 통한 인권 침해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1987년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재조사 얘기도 나오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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