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름값 하고 계십니까

  • 입력 2004년 7월 20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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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내걸린 어느 가게 간판을 보고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상호가 ‘○○관(館)’으로 거창했는데 막상 가게 안은 포장마차 수준이었다.

요즘 노무현 정부의 정치행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명(名)과 실(實)의 어긋남이다. 현 정부의 명칭은 ‘참여정부’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는 “한국 민주주의를 국민의 참여가 일상화되는 참여 민주주의 단계로 발전시켜 진정한 국민주권 및 시민주권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갸우뚱하게 된다. 지금 한창 논란이 뜨거운 수도 이전 문제만 해도 국민적 참여가 성패(成敗)의 관건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이나 야당, 특정 언론에 증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신 친여(親與) 외곽세력은 노 대통령을 따르라며 연일 진군(進軍)나팔을 불고, 집권측은 그들의 충성심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집권세력과 코드가 맞는 세력은 과잉 참여고, 그들과 가치지향이 다른 사람은 참여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집권 이후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쓴소리, 독한 소리에 귀를 더 크게 벌리는 게 진정한 참여의 정신이 아닐까.

열린우리당도 한통속이다. 요즘 그들의 행태를 보면 당명(黨名)과 한참 거리가 있다. 국회 운영에서, 국민과 언론을 대하는 모습에서 ‘열림’이나 ‘우리’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그들은 “참여와 통합을 아우르는 의미”라며 새 당명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정말 열려 있는가. 매사를 당략(黨略)이 아닌 나라와 국민의 편에서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지금 나라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요 며칠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태를 둘러싼 청와대와 군(軍)의 갈등에서 보듯 안보, 경제, 치안 등 어느 분야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여권이 이름값을 바로 해 국정운영의 보폭(步幅)을 넓혔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여’ ‘열림’ ‘우리’는 결국 같은 뜻이다. 그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낮추는 관용과 겸손의 자세다. 예를 들어 야당과 언론의 요구대로 국회에 수도 이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이 문제의 재론(再論)에 들어갔다면 그게 바로 국민적 합의를 얻어나가는 길이 됐을 것이다. 치열한 토론 끝에 표결로 가더라도 원내 과반의석의 여당이 손해 볼 게 뭐 있나.

아이에게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며 어른들은 그가 이름대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 작명(作名)을 하며 수없이 뜻을 되새기고 음미해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찮은 막대기도 지팡이라 부르면 격(格)이 달라 보인다. 집단과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름에는 의지와 철학이 담겨 있다. 그제 취임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명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노 정권이 집권한 지 1년 반이 다 돼 간다. 이제 이름값도 못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 생각도, 자신도 없다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란 허울뿐인 포장부터 폐기해야 할 터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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