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2차 남북 정상회담의 조건

  • 입력 2004년 7월 1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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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하다. 이달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국측 소식통에게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기답방 의사를 전해 들었다는 보도가 소문의 불씨가 됐다. 그 후 러시아의 정상회담 중개설, 남북 당국의 교감설 등 소문은 가지를 치면서 갈수록 확대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선(先) 핵 해결, 후(後)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거듭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문은 쉽게 수그러들 기색이 아니다.

주목되는 것은 일부 여당 의원들의 언행이다. 이들은 엊그제 국회에서도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할 용의는 없는가” “남북 정상회담 등 적극적인 남북간 교류협력이 북핵문제 해결에 더욱 기여할 것” 등 정부 입장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쏟아냈다. 마치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난제가 한꺼번에 풀릴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남북 정상이 만남의 자리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남북간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정상회담만한 계기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 하반기가 과연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적절한 시기인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핵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구도는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 정세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서의 정상회담, 다른 하나는 북한이 확고하게 핵 폐기 의지를 보이는 등 전망이 낙관적일 때 변화를 가속화하는 촉매로서의 정상회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 상황은 두 가지 중 어느 쪽도 아니다. 미국은 지난달 3차 6자회담에서 처음으로 포괄적 핵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가능할지 깜짝 놀랄 것”이라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최근 발언은 여기에 무게를 더해줬다. 지금은 4차 6자회담에서 나올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기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핵 폐기 방안을 내놓는다면 모를까, 이럴 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협상의 전선(戰線)이 흐트러질 수 있다. 미국이 대북(對北) 협상력의 약화를 우려할 것은 당연하다. 가뜩이나 주름져 있는 한미관계의 균열은 더 깊어질 것이고, 6자회담의 효용성도 대폭 약화될 것이다. 핵문제는 어차피 미국과의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북한으로서도 현 시점에서의 정상회담은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2차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핵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획기적이고 신뢰할 만한 조치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점, 긴밀한 한미공조 하에서 회담이 추진돼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난’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정말로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자신의 낭만적 대북관, 혹은 진보적 성향이 ‘우군(友軍)’인 정부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게 아니라면 야당이 우려하는 것처럼 내심 남북 정상회담의 ‘정치적 파생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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