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선별심의 문제점]논란 심한 프로그램 심의포기

  • 입력 2004년 7월 7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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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가 6일 탄핵방송과 관련해 9개의 개별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심의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사실상 탄핵방송에 대한 심의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탄핵 관련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편파성 논란이 거세게 제기돼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에서 검토해 온 개별 프로그램들은 심의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방송위가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의 대상 대폭 축소=3월 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방송위에 들어온 탄핵방송 관련 민원은 모두 46건. 이 중 보도교양 제1심의위가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공정성 위반 여부를 심의해 온 프로그램은 MBC TV ‘신강균 뉴스서비스 사실은…’, KBS1 TV ‘미디어포커스’ 등 모두 18건이었다.

방송위 관계자는 “시청자들이 제기한 민원 가운데 민원 빈도가 높고 공정성 위반 혐의가 분명한 것 순으로 안건을 상정해 심의해왔다”고 밝혔다. 이는 방송위가 앞으로 심의하겠다고 밝힌 9개의 프로그램이 이미 상정된 프로그램보다 공정성 위반 정도가 훨씬 약하다는 뜻이다.

방송위가 그동안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던 프로그램들에 대해 심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근거는 3월 31일 내린 ‘권고’ 조치에 있다.

보도교양 제1심의위는 당시 KBS1 ‘뉴스9’, KBS2 ‘생방송 세상의 아침’, MBC ‘뉴스데스크’ 등 3개 프로그램의 4개 보도내용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안건으로 상정된 프로그램 18건 모두에 대해 “탄핵 관련 방송에 더욱 신중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심의위원들은 당시 4개 보도내용에 대해서만 시사회를 가졌고 나머지 안건들은 문건만 보고 ‘권고’ 결정을 내렸다.

▽방송위 결정에 심의위원도 비난=1일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9명의 방송위원 가운데 심의 강행을 주장했던 야당 추천 위원들은 “개별 프로그램은 계속 심의한다”는 조건 하에 대통령과 여당 추천 위원들이 제기한 포괄적 심의 ‘각하’ 결정을 수용했다. 그러나 6일 회의에서 대통령과 여당 추천 위원들은 다시 말을 바꾸어 심의 대상 프로그램을 축소할 것을 주장했고 표결 끝에 5 대 4로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보도교양 제1심의위의 한 위원은 “문제가 된 프로그램들을 다 심의해야지 선별적으로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방송위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일반 시청자들이 제기한 민원은 심의 대상 안건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전문가 집단인 언론학회가 탄핵방송 보고서에서 공정성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한 프로그램들은 심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언론학회 보고서의 책임연구원을 맡았던 이민웅(李敏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최창섭(崔昌燮)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위의 상식을 벗어난 결정에 대해 맥이 빠져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허탈해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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