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수도이전 계획 예산때문에 실행 못옮겨”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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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건설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은 무엇보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손정목(孫楨睦)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23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1979년 5월 14일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종합보고서’가 박 대통령에게 제출됐을 때 박 대통령은 ‘추진하라’는 지시 대신 ‘기본계획을 더 깊이 검토하고 보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손 교수는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냈고 서울시 시사(市史)편찬위원장을 지냈다. 수도 이전 계획 수립에서 무산 단계까지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확보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70년대 임시행정수도 건설 계획인 이른바 ‘백지계획’이 추진될 수 없었던 것은 2차 석유파동이 터지고 중동건설 붐이 수그러드는 등 경제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지미 카터 정부가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늘릴 필요도 생겨 당시 정부로서는 임시행정수도 건설에 예산을 지출할 여유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 안보적 사정과 비슷한 점이 많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손 교수는 “종합보고서가 제출되기 한 달 전인 79년 4월 17일 정부는 ‘경제안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며 “여기에서 ‘물가안정 등 당면 경제정책으로 재정긴축을 강행하고 불요불급한 정부 공사의 집행을 보류 또는 연기하겠다’고 했는데 임시행정수도 건설이 바로 대표적인 불요불급한 사업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박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백지계획’ 보고서가 놓여 있었고 박 대통령은 틈만 나면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큰 낙(樂)이었다”며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당시 경제상황과 재정 여건을 생각해 계속 미뤘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보고서에는 임시행정수도 건설 투자비용이 1982∼1996년 15년간 총 5조5421억원이며, 이 가운데 25%인 1조4046억원이 1982∼1986년 5년간 투자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79년의 정부 예산은 4조5338억원으로 올해 예산(117조5429억원)의 3.9% 수준. 당시로서는 정부 예산의 31%가 5년간 행정수도 건설에 투입되는 부담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

손 교수는 70년대 말 당시와 현재 수도이전 계획의 차이에 대해 “그때는 군사 목적에 의해 서울 인구를 북한의 장거리포 사정권 밖인 충청권으로 분산하려던 것이고 지금은 정치적 목적으로 나온 선거 슬로건이어서 추진 배경부터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후임 정권이 ‘수도 이전을 재고(再考)하겠다’고 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면서 “교육기관 이전 계획이 빠진 수도 이전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하겠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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