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 遷都논란]<2>국토균형발전론 허실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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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과 함께 비충청권 지방에 공공기관을 옮기고 지방대학과 산업을 육성하면 전국이 골고루 잘살 수 있다.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되면 수도권의 인구, 교통, 환경, 기업여건이 쾌적해져서 국제 경쟁력이 더 강화된다.”(수도이전 찬성측)

“서울과 충청권을 연결하는 거대 수도권이 생기고 여기에 자원이 집중되면 다른 지방과의 격차는 더 커진다. 정치 행정 사법 외교가 다 빠져나가면 한국의 대표 도시였던 서울의 국제적인 위상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수도이전 반대측)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한 논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국민투표 등 절차상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도를 옮기면 정말 나라 전체가 골고루, 더 잘살게 되나’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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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위원장 김안제)는 수도이전으로 국가 균형발전과 수도권 경쟁력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측은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이 낮아져 전국이 하향 평준화되거나 기껏해야 충청권만 좋아진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과 국가 전체 경쟁력 올라가나, 떨어지나=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는 현재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이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수도권의 숨통을 터줌으로써 수도권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결국 수도이전이 국가균형발전으로 가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것.

이춘희(李春熙)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 부단장은 “외국의 주요 기업들도 지금처럼 규제가 많아 기업하기 힘들고 집값이 비싸고 하루 종일 교통이 막힌다면 서울에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수도권 집중과 과밀을 해소해 결과적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경쟁력을 올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행정기능이 모두 옮겨가면 수도권에서는 기업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크게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희윤(鄭熙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수도이전대책연구단장은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등으로 힘들게 높여 놓은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했다.

정 단장은 “글로벌 시대에는 나라 안에서 수도와 지방이 나눠먹기를 할 게 아니라 국가끼리, 도시끼리의 경쟁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도 1970년대부터 도쿄(東京) 일극(一極) 집중에 따른 과밀화 문제가 거론됐다. 92년에는 ‘국회 등의 이전에 관한 법률’까지 통과돼 수도이전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90년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도쿄가 국제도시간 경쟁에서 밀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도이전 계획은 유야무야됐다는 것.

▽수도권 과밀화 및 집중도 해소되나=정부가 수도이전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수도권의 과밀화와 집중.

인구, 물류, 정치 경제 파워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이제는 집중으로 얻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넘어섰다고 설명한다.

2002년 현재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7.2%가 몰려 있다. 이는 런던(12.2%), 파리(18.7%), 도쿄(32.4%) 등 선진국 수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또 제조업체의 56.4%가 수도권에 몰려 있을 정도로 경제분야의 수도권 집중도는 더욱 높다. 이제는 분산시키는 것이 수도권의 경쟁력을 올리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신행정수도 건설로는 수도권의 인구 교통 과밀 해소 효과가 거의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 예측대로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51만3000명이 빠져나가도 이는 2030년 추정인구 2554만6000명의 2%에 불과하다는 것.

인구 분산 효과는 거의 없으면서 수도의 행정 사법 입법 서비스 기능이 통째로 빠져나감에 따라 도시경쟁력만 약화된다는 주장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해소되나=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고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총론에는 누구나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엇갈린다.

추진위는 “신행정수도 건설은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등 다른 국정과제와 함께 ‘전국 어디나 고루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자립형 지방화 전략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방대학을 육성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산업육성 전략을 세우겠다는 것. 또 공기업을 충청권 외의 지방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호남, 강원, 제주 등 다른 지방에서는 국가 예산 등 한정된 자원이 충청권에만 집중 투입돼 나머지 지방은 더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또 행정수도 이전으로 서울-충청권 축이라는 ‘거대 도시권’이 형성돼 다른 지방과의 상대적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이재하(李宰夏)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는 “행정수도 기능이 서울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인 충청권에만 집중되면 결국 수도권의 범위만 넓어져 다른 지역과의 또 다른 불균형을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문화관광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 반드시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는 중앙부처를 각 지방에 골고루 분산 배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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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수도 옮겨도 本社 따라갈 계획없다”▼

재계는 정부의 수도 이전 방침에 대해 입장표명을 유보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계 저변에서는 광범위하지는 않지만 수도 이전 반대론이 감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행정수도가 이전한다고 해서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기업은 없었다.

▽수도 이전 찬반 양론=공공연하게 반대론을 펴는 대기업은 없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행정수도가 이전하면 기업들이 그곳에 지사나 지역본부를 세울 수밖에 없고 인건비 운영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장이나 고위임원들이 정부 고위 당국자를 자주 접촉하는 한국의 기업 현실에서 수도가 이전되면 기업인들이 행정수도로 달려갈 수밖에 없고 결국 기업비용이 늘거나 의사결정이 지연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임원은 “기업의 주요 활동이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등이 옮겨가면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수도 후보지가 서울에서 멀지 않고 생산 판매 물류 등 기업 기능이 어느 정도 분산돼 있기 때문에 기업 활동에 큰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건설 특수(特需)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성하(趙成河) 상무보는 “서울에 금융기관이 남아 있어 기업의 재무 활동에 문제가 없을 것이며 인터넷 등 통신이 발달해 정부와 기업간 의사소통 비용도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건설 특수도 예상된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규제 완화=일부 경제단체와 기업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성공 여부를 규제 완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李彦五) 전무는 “규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수도만 옮긴다면 기업들로서는 상당한 불편이 따를 것”이라면서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규제혁신과 병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상의 이현석(李鉉晳) 상무도 “정부와 기업의 업무 협의 수요를 대폭 줄일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별 반응=대부분의 주요 그룹들이 신중론을 펴면서도 본사를 옮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또 일부 그룹은 국민적 합의 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고위관계자는 “사회의 찬반 논란과 정치권의 국민투표 공방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도 이전을 전제로 (기업이) 대비책이나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롯데측은 “행정수도를 옮긴다고 해서 금융과 소비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본사를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제철소에 본사를 둔 포스코는 서울사무소의 기능 중 정부와의 협의 기능을 떼어내 행정수도에 별도 사무소를 두는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SK는 “수도 이전은 국가경쟁력 제고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전제 아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화측은 “수도 이전과 관련해 기업 경영의 효율성과 인프라 등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원재기자 wjlee@donga.com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주요 그룹 입장
삼성영향 검토 중
LG그룹 차원의 입장 없음
SK이전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함
현대자동차공식적인 입장 없음. 사옥 이전 가능성은 희박
롯데본사 이전 계획 없음. 별도 사무소 설치는 이중비용 문제 있음
KT경영에 미치는 영향 없음. 본사 이전 계획 없음
한화향후 추이를 지켜보겠음
현대중공업찬반 입장 정하지 못했음
포스코중립.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기업 영향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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