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헌재변론 불출석]‘안나서는게 유리’ 판단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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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4일 탄핵심판 사건 공개변론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법정 출석 자체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출석할 경우 직접 재판관들 앞에 나서 탄핵사유나 절차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존중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소추위원인 김기춘(金淇春·한나라당) 국회법사위원장이 정치공세를 펼칠 것이 예상된다. 대통령 몰아붙이기나 망신주기 작전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이 직접진술을 통해 특별히 규명할 사실이 없다’는 점도 불출석을 결정한 배경이 됐다. 이번 사건은 당사자인 노 대통령의 진술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실관계가 확정된 사안에 대해 법적 판단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즉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행위가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 만약 위반이라면 탄핵사유에 해당할 만큼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인지에 대한 법적 판단만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하면 공개변론 출석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의 출석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불출석은 단지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노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이다.

노 대통령 대리인단의 문재인(文在寅) 변호사는 “대통령 출석 여부에 대한 헌재의 불필요한 논의를 방지하기 위해 2차 평의(評議)를 앞두고 불출석 사실을 공표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출석 여부와 관계없이 법에 정해진 대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30일 첫 변론 기일에 재판을 연 뒤 실제로 노 대통령이 불출석하면 재판을 연기하고 다음 기일을 지정하면서 재소환을 통보한다는 것. 2차 기일에도 불출석할 경우 대리인단만 참석하는 ‘궐석(闕席) 재판’을 진행한다.

대리인단은 대통령 출석이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신속한 재판이 요구되는 만큼 30일로 예정된 첫 기일부터 실질적인 재판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헌재는 ‘첫 기일에 당사자가 불출석하면 재판을 열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실질적인 법정공방은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2차 기일로 넘어가게 됐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최종 결정은 4·15 총선 이후에 내려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자연히 총선에 반영된 ‘민의(民意)’가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짙어졌다.

노 대통령의 불출석이 재판에 변수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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