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최영해/청와대가 입 닫으면…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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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5일 대통령 재신임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둘러싸고 발설자를 색출하느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이 보도를 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내 뜻과 다르다’면서 불같이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이날 오전 10시경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을 찾아와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면서 “대한매일 1면 머리기사인 ‘야당 반대 때는 투표강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경위를 즉각 철저하게 조사해 관계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특정신문의 기사에 이처럼 즉각적인 반응과 함께 엄중 문책하라고 지시까지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이 전날 참모들에게 “재신임 국민투표는 나와 정치권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이므로 언급을 자제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한 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청와대 고위관계자 발(發)로 이런 민감한 내용이 나갔으니 물론 화가 났음직도 하다.

하지만 문제의 기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청와대 참모라면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상식선의 언급이어서 왜 대통령이 이처럼 격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사의 골자는 ‘정치권이 끝까지 반대하고 위헌이라는 판단을 받을 경우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민투표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매우 원론적인 언급이었고 실제 본보도 이미 이런 내용을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며칠 전 보도한 바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격분한 것은 이 기사가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됐기 때문인 것 같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1면 머리기사에 났다고 해서 갑자기 그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엄청난 국가기밀’로 둔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접 색출지시를 내리며 발설자를 엄중문책하라고 다그친 것은 아무래도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 안타까웠던 대목은 발설자 색출작업이 벌어졌던 이날 하루 종일 청와대 직원들이 기자들의 어떤 질문에도 함구로 일관한 점이다. 심지어 이날 박상천(朴相千) 민주당 대표의 연설에 대한 반응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대부분의 직원들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에게 물어보라”며 아예 손사래를 쳤다. 일부 직원들이 이 문제와 상관없이 기자들과 나눈 얘기조차 나중에 “없던 일라 해달라”며 사정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빚어진 이날 소동을 지켜보면서 마지막에 남은 의문은 단 한가지였다. ‘국민의 알 권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영해 정치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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