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5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드러나는 친북 행적, 당황하는 진보 세력=올 2월부터 송 교수를 초청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여 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지난달 30일 열린 학술심포지엄 ‘한국민주화운동의 쟁점과 전망’에서 당초 송 교수가 맡기로 한 기조강연을 취소했다가 번복하는 소동을 벌였다. 기념사업회가 인정하는 ‘해외 민주화 인사’가 민주화 기념사업에 오히려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벌어진 일이었다.
진보적 학자들의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소속의 한 교수는 “유신 체제에 환멸을 느껴 친북 성향을 갖게 된 점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란 과거 신분을 처음부터 솔직히 밝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가 ‘준법서약서’를 국정원에 제출한 것도 진보 인사들이 의아해 하는 부분. 그동안 송 교수는 입국 불가 등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자적 양심을 지키겠다”며 서약서를 거부해 왔다. 송 교수는 당초 발표할 예정이던 기조강연 원고에서 대북송금 특검법을 언급하면서 ‘기득권 세력이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여야 한다는 강박을 사회변혁세력에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앞으로 한국의 법을 지키겠다며 사실상의 준법서약서를 쓴 자신의 행동과 모순된 것이다.
▽송 교수 입국 강행 추진 이유=송 교수에 대한 정부의 조사 방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진보 학자들이 그의 귀국을 위해 애써 온 이유는 냉전시대에 송 교수가 해외에서 민족분단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한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정인(金正仁) 학술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송 교수는 군부독재 시절 국내 어떤 학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에 대응했다”며 “국내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 문제에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동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남북이 서로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상대를 폄훼하기보다는 ‘내재적 관점’에서 서로를 평가하면서 이해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강조해 왔다. 그의 이런 관점은 북한의 유일독재를 합리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학자들로부터 냉전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넓혔다는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진보학자는 “국정원 보고와 정형근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송 교수의 이론은 중립성 면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법이 가진 학문적 효용성은 그것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문의 자유’와 실정법 위반의 딜레마=송 교수는 한국철학회가 10∼12일 서울 서강대 다산관에서 개최하는 한국철학자대회 첫날 행사에 참여해 ‘분단 체험과 민족 통일에의 전망’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일 송 교수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음이 밝혀짐에 따라 철학자대회 참석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이는 송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해 ‘학문 활동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가’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진보계열 학자인 김세균(金世均)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학문의 자유는 실정법을 넘어서므로 실정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학문적 견해는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경우는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국철학자대회 집행위원회측은 “송 교수의 이 대회 참여 문제는 2일 오후 열리는 집행위원회에서 좀 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송두율씨 초청 민주화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朴炯圭 목사)는 ‘험난했던 근현대사의 역사적 동력이었던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2001년 6월 28일 국회에서 통과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의해 2002년 1월 29일 출범했다.
사업회는 설립비용과 사업예산을 전액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는 공공특수법인체로 행정자치부에 등록돼 있다. 그러나 조직원들은 모두 비(非)공무원 출신으로, 민간기구라는 이중적 성격도 띠고 있다.
사업회는 민주화운동의 정신계승과 민주발전을 위한 지원과 기념사업, 추모사업, 유적지 발굴 보존사업 등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회는 이 중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건립하고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기념관에는 민주화운동 및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연구소,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를 관리 전시 열람하는 사료관 등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회의 임직원은 48명이며, 향후 기념관이 건립되면 기구를 두 배로 늘리고 행자부에서 3명의 공무원을 파견받기로 했다. 2002년은 71억원, 올해는 78억원의 예산을 할당받았다. 해외민주인사 초청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마련됐다.
한편 사업회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송두율(宋斗律) 교수 입국과 관련한 입장’이라는 글을 싣고 ‘송 교수의 여러 혐의에 대해 본인이 주장하는 정당성이 조사과정을 통해 떳떳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회는 또 ‘송 교수와 관련하여 친북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사업회는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송 교수의 충분한 기여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초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