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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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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래 한국사회는 보혁갈등 노사갈등 지역갈등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반비례하며 보수와 진보세력 간에 빚어지고 있는 이른바 ‘남남(南南)갈등’은 국론 분열로 느껴질 정도로 골이 깊어지고 있다.
▽심화되는 보혁 대결=역대 정권에서 상대적으로 움츠려 있던 진보세력은 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지난 6개월 동안 각 분야의 전면에 나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기득권층이 격렬히 대응하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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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출범 이래 보수와 진보진영은 수차례 대규모 세대결을 펼쳤다. 광복 직후 좌우 대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집회 규모가 컸고, 그때마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또한 거셌다.
보수단체들은 3·1절 11만여명, 6월 21일 11만여명, 광복절에 1만5000여명을 서울시청 앞에 집결시켜 ‘확산되는 친북 분위기’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최근 인공기 소각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유감 발언에 대해 규탄 신문광고와 성명을 내는 등 점차 단결하면서 조직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진보진영의 활동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386 참모’로 불리는 진보진영 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은 차치하고라도, 각 진보단체가 연합해 3·1절, 광복절, 대구 유니버시아드 등을 통해 ‘반전’ ‘반미’ ‘평화’ ‘남북대화’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보혁 대결은 대규모 집회에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3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교육인적자원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대립은 연가투쟁과 교장 자살로 이어지면서 양측의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했다.
이 교단갈등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불씨’로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노 대통령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합법화 검토 언급, 이라크전쟁 파병 문제, 노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대미·대북 관련 발언 등을 둘러싸고 지난 6개월 동안 치열한 보혁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민 사회단체는 물론 온라인상에서도 연일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대법관 제청을 둘러싸고 벌어진 연판장 사태도 사법부 내에서 보혁 대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대립은 급기야 한총련 학생들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방해사건이나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의 보수단체와 북한 기자단 충돌과 같은 불상사를 초래했다.
▽진단과 처방=이에 대해 각계 인사들은 우리 사회가 소모적 대립을 막고 국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했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이해관계 조정자인 국가와 언론 지식인집단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계 인사들은 특히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방임해온 현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특히 그 저변에는 이른바 ‘코드론’으로 상징되는 현 정권의 ‘편가르기’가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박길성(朴吉聲·사회학) 교수는 “보혁갈등이 예상보다 훨씬 심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민간 스스로의 조정 기능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놔버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신대 김성재(金聖在·전 문화부장관) 교수도 “현 정부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정부와 언론, 지식인 사회가 나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합리적인 공론의 장(場)을 만들자”고 제언했다.
고려대 김우창(金禹昌) 명예교수는 “‘동아리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가 나서서 갈등을 해소하기가 어렵다면 지식인들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갈등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정년퇴임한 한 서울대 명예교수는 “양극화 구도로만 치닫던 사회세력들이 ‘광장’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긍정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길잃은 '참여복지'▼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취임 초 ‘참여복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참여복지란 개념이 생소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관료들이 서둘러 참여복지의 개념을 정립하느라 애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보건복지부 내에서조차 참여복지라는 말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취임 초에는 기대를 많이 했지만 복지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철학과 비전을 읽을 수 없어 실망했다”며 “제도나 예산 측면에서 앞으로의 방향성마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시민단체에서는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 ‘배신당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김연명(金淵明·중앙대 교수) 사회복지위원장은 “정부의 복지 분야 정책이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며 “최근 나온 국민연금 개정안도 당초 정부가 제시한 공약과도 차이를 보이는 등 정부에 배신당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홀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노사문제를 푸는 해법도 복지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통원(金統元) 성균관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 편향의 정책을 펴는 한 갈등은 줄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의 초점을 친(親)복지쪽으로 틀고 사회안전망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노동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경실련의 고계현 정책실장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제도적인 틀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없이 겉돌고 있어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복지정책의 마스터플랜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송재성(宋在聖)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올해는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이 만들어지는 시점”이라고 전제하고 “적절한 속도로 참여복지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사각지대를 없애고 복지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에 주력한다는 복안이다.
송 실장은 “앞으로 사회복지 지출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에서 13.5%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한편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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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비판보도 봉쇄…끊임없는 갈등▼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6개월 동안 언론과 관련해 여러 정책과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시장’이라는 언론 특성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합리적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동아 조선 등 주류 언론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해 오히려 사회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 정부기관의 가판신문 구독 금지, 공무원과 기자의 접촉제한과 브리핑제 도입, 신문고시 개정 등으로 ‘취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율성’에 대한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정부 실정에 대한 비판에 적대적 감정을 감추지 않더니 최근 들어서는 언론을 대상으로 민·형사소송까지 제기, 비판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면전환용 언론비판=노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며 언론 공세에 나섰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언론관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의도적 비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얼마 전 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이 터졌을 때가 대표적 사례. 노 대통령은 “언론 때문에, 후속기사가 두려워 아랫사람 목을 자르고 싶지 않다”며 갑자기 언론에 공세를 취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과 측근들이 관련된 ‘재산 의혹’을 다룬 보도에 대해서는 4개 언론사를 상대로 모두 2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언론 공세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의 기존 지지층도 ‘선택과 집중’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언론과 싸우느라 국민들이 염원해온 정치개혁, 북핵문제 해결, 노사갈등 해소 등의 국가과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것. 한국노총도 24일 노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성명을 내고 “노 대통령이 정책의 실패에서 오는 국민적 불신의 책임을 언론쪽에 전가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 매체에 대한 차별적 대응=노무현 정부는 주류 언론에 대한 공세를 지속하는 한편 방송 및 인터넷 매체 등은 ‘우대’함으로써 주류 언론에 대한 ‘포위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문고시 개정과 공동배달제 지원 등으로 언론시장에 개입하려 하고 있으며, ‘오보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주류 언론의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KBS 등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 매체들은 노 대통령과 유사한 코드로 주류 언론에 대한 공세를 노골화했다는 비판이 많다.
박천일(朴天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노 대통령은 ‘인터넷 국정신문’ 도입이나 ‘공무원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보듯 기존 언론을 철저히 우회하는 국민설득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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