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살리기에 대통령직 걸어야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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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은 이 나라의 가장 우울한 현실은 경제가 중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다수 국민은 오늘의 경제난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보다 힘겹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조짐이 짙어지는 등 산업 공동화(空洞化)가 우려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거나 하고 싶어도 쉽게 투자할 수 없는 역풍에 시달리고 있으며 외국 자본도 한국에 대한 장기 투자에 고개를 젓는다. 조직 노동계는 눈앞의 열매 따먹기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경제의 새로운 ‘씨’가 뿌려지지 않으니 국민 전체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 불안하다.

경제의 종합성적표라 할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1·4분기(1∼3월)와 2·4분기(4∼6월) 내리 전기(前期)에 비해 마이너스다. 작년 동기 대비 성장률도 1·4분기 3.7%에 그쳤고 2·4분기엔 1.9%로 추락했다. 매년 7% 성장이라는 노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떠올릴 여유도 없다. 연간 수십만개의 새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취업자 증가율이 4월 이후 계속 마이너스인 사실만으로도 성장 없는 고용창출, 분배개선, 복지증진의 허구성이 확인될 뿐이다.

그런데도 강성 노조들의 파업사태가 이어지고 노사갈등이 심화돼 기업들의 임금부담이 늘고 효율적인 투자와 인력 구조조정은 벽에 부닥쳤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다. 이런 가운데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비조직 노동자들의 생업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으며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생활고 자살까지 잇따른다.

이런 경제상황에 대해 노 대통령 정부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규제가 선(善)인 양 기업 발목잡기에 앞장선 것도, 노사간 힘의 균형론을 펴면서 노조의 기대심리를 부추긴 것도 정부다. ‘법과 원칙’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한 것은 원론적 잘잘못을 떠나 불필요한 혼란과 조정 코스트의 급증을 불렀다. 성장과 분배의 선후관계가 명백함에도 좌파적 이념에 빠져 분배를 강조하고 투자촉진과 지역균형발전, 개발과 환경보호 등 상충된 정책목표들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정책 표류와 혼선을 빚어냈다. 각종 경제협의체를 양산했을 뿐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실기(失期)하지 않고 선택해 현안 문제를 풀어내는 리더십도, 전문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노 대통령과 정책 당국자들은 지금부터라도 경제 살리기에 자리를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목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정책목표의 최우선은 성장잠재력 회복을 통한 ‘파이’의 극대화와 이를 위한 투자촉진에 두어야 한다. 기업을 견제대상으로 삼는 비뚤어진 기업관을 고치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등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쳐 국내외 투자자들과 시장을 안심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대다수 국민과 정부가 사는 길이다. 경제의 체질과 기반이 극히 약화된 상태에서 모험과 실험을 거듭하면서 목표도 불분명한 어설픈 개혁카드만 꺼내든다면 경제 회복의 길은 점점 멀어질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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