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피해구제인가, 언론규제인가

  • 입력 2003년 8월 1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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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본보를 비롯한 4개 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 것은 ‘권언(權言)간 건전한 긴장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불행한 일이다. 특히 대통령 자신과 주변 인사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한 피해구제 절차라기보다는 특정 신문을 규제하기 위한 감정적, 정치 전략적 대응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일반인과 달리 언론 보도에 반박, 항의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고, 사정기관을 통해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대통령이 굳이 법정공방을 선택한 것이 그런 인상을 준다.

이번 소송은 또한 타협과 절충이라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언론중재위 제소를 통해 정정보도나 반론권을 얻어낼 수 있고 미흡할 때 소송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이런 질서조차 무너뜨리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압박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소송 당사자인 사건을 법원이 공정하게 다룰 수 있겠느냐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공직자들에게 주는 심리적 중압감도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과 똑같은 방법으로 언론에 대처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소송에 앞서 청와대비서관들이 일부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언론에 대한 정부의 소송도 잇따를 것이란 관측이다. 법적 하자 여부를 떠나 권력과 언론, 정부와 언론 간에 송사가 거듭되는 것이 과연 국론 통합에 바람직한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론화된 사건에 대해 의혹의 단계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기능이다.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 ‘법대로’를 외치며 소송을 남발한다면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될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외로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지금 ‘언론과의 싸움’의 선봉에 선 듯한 대통령을 국민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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