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연장요청 정치권 반응]청와대 "거부할 명분이…" 곤혹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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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0일 오후 2시경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수사기간 연장요청서를 전달받고 곧바로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오후 2시반경 민정수석실 내 비서관들을 소집해 1시간40분가량 회의를 열고 특검팀이 제시한 연장사유가 법적으로 타당한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 회의에서는 특검팀이 제시한 연장사유에 법률적 하자는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일부 비서관은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150억원 비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추가조사는 대북송금사건의 본류가 아닌 파생 사건인 만큼 검찰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문 수석은 "박 전 장관의 혐의 부분이 특검의 수사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특검이 판단할 일이다"며 법률적으로는 연장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 수석은 또 "연장 사유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포함돼있지 않고, 특검도 김 전 대통령을 조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기한 연장=DJ 조사'를 이유로 연장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민정수석실은 특검팀이 '수사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연장요청서를 이날 오후 특검팀의 동의를 구해 언론에 공개해 '연장요청 사유가 별 게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저녁에는 시내 모처에서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이 모두 참석해 만찬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눴으나,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이 자리에는 나중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합석했고,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참모진 가운데 문 실장과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정무라인은 이날 수사기간 연장에 반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유 수석은 "법논리로 따지면 특검팀의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지만, 특검법 수용에 이어 또다시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면 지지층으로부터 맞아죽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라며 현실론을 내세웠다.

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21일 오전 노 대통령과 송두환 특별검사와의 회동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문 실장과 문 수석 외에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 정상명(鄭相明) 법무차관도 배석할 예정이어서 청와대-특검-법무부 3자간 의견 조율이 이뤄질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이 회동에서 특검팀의 DJ 조사 가능성 등을 분명하게 확인한 뒤 최종결심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당은 신·구주류 할 것 없이 "이제는 국익과 남북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특검 연장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재야 출신인 김영환(金榮煥) 이창복(李昌馥) 심재권(沈載權)의원 등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이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 수수설을 언론에 유출시켜 대북송금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수도권 소장파 원외위원장 10명도 국회 앞에서 특검 연장에 반대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권의 특검 수사 연장반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박희태(朴熺太) 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특검 연장을 반대한다면 이는 만병의 근원이 될 것이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당략에 사로잡혀 비정상적 일을 한다면 이후 정국은 어디로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특검이 밝힌 수사기간 연장 사유

특별검사는 현재,

①박지원(전 문화관광부장관 겸 남북정상회담관련 대통령 특사)을 직권 남용 및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수수)혐의로 구속(2003.6.18)수사 진행중에 있고,

②위 사건의 공소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관련 금융자료의 압수수색 및 자금추적 등 조사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③그 외의 관련자들(국가정보원, 현대그룹, 한국외환은행 등 소속)에 대하여 공소제기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한 추가 보완수사를 진행중에 있고,

④이 사건 사실관계의 윤곽이 드러나는 단계에 맞추어, 법 제2조 제4호 소정 여러 기관의 비리의혹에 대하여 응답하기 위한 조사를 하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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