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 경추위 진통]"南이 달라졌다" 北 고민

  • 입력 2003년 5월 22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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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가 북한의 ‘헤아릴 수 없는 재난’ 발언을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남북은 22일 44시간 만에 실무급 접촉을 재개해 북측의 해명을 듣고 이를 남측이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했다.

남측이 북한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아 해명을 요구한 것은 대북 접근방식 자체가 변화한 데 따른 것이다.

남측 대표단은 20일 첫 전체회의에서 북측이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조적인 조치요 하면… 남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이 내용을 비공개 원칙을 깨고 북측 라디오방송이 보도한 것을 문제삼았다. 남측 대표단은 줄곧 “북측의 납득할만한 해명이 없다면 회담에 연연치 않고 서울로 그냥 돌아가겠다”고 북한을 압박했다.

남측 대변인인 조명균(趙明均)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북한이 조금만 진전시키면 우리도 조정할 수 있었지만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협상의 핵심은 쌀 지원 여부가 아니라 북측이 남측의 변화된 협상 자세를 읽었느냐다”고 말했다.

이런 줄다리기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또 북한이 회담의 본질과 관계없는 문제를 제기할 경우 남북 경협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 우리 대표단이 북한에 줄 것은 다 주고도 협박만 당하는 일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도 눈에 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표방해 온 남북경협에서의 ‘정경분리’ 원칙이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정부는 당초 이번 회담을 통해 북측에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쌀 40만t을 제공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핵 문제에 이어 ‘재난’ 발언이 터지자 대북 여론 악화를 의식해 남북경협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남측의 달라진 접근법은 가뜩이나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는 북한의 정치 경제적 고통의 골을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의 마약과 위조지폐 거래를 문제삼아 국제 여론을 끌어들이고 있고 일본 정부도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총련 자금의 북송을 제한할 수 있다”며 미국과 ‘코드 맞추기’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후원국인 중국도 지난달 초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석유제공을 3일간 중단해 북한을 3자회담에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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