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추위 결렬위기]정부 "협박발언 그냥 못넘긴다"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41분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처음 열린 남북간 공식접촉인 제5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평양 회의가 북한의 “남한에 헤아릴 수 없는 재난” 발언으로 이틀째 겉돌았다.

이날 두 차례 예정된 회의는 모두 무산됐고, 오후 7시로 예정된 만찬도 따로따로 가졌다. 이 때문에 회담이 결렬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남측 회담 대표인 김광림(金光琳) 재정경제부 차관은 ‘예정대로 귀국하겠다’며 북한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변인인 조명균(趙明均)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회담 결과에) 비관도 낙관도 않겠다”고 말해 마지막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표단의 북한 출발 예정시간은 22일 오전 10시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이날 시종 강경한 분위기였다. 북한이 ‘재난’ 발언에 사과하지 않으면 회담 자체를 결렬시킬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정하고 대표단에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쌀 50만t 지원은 요청하면서도 강경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한국의 쌀 지원을 고분고분 받으면 미국 보수파들에게 ‘약한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당장 남한에서 식량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우리로선 급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국내 여론도 의식하고 있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고 쌀 지원을 할 경우 국내 여론의 악화로 인한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끝까지 강경 기조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은 중요한 표현은 성명, 노동신문 보도, 국영방송 보도를 통해 3, 4차례 반복해 사용하고 있지만, 21일 아침 노동신문에선 ‘재난’이란 표현을 볼 수 없었다”면서 협상과정에서 북한이 ‘한 발’ 물러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이 같은 강경 분위기는 ‘북한 길들이기’란 시각도 있다. 과거 쌀을 지원하면서 저자세였다는 비난을 벗어나려면 한국 정부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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