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多者대화 틀 수용 시사]이라크戰 조기종결에 당혹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코멘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다자대화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함에 따라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발걸음이 분주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북-미 양자대화만을 고집하던 북한의 태도 변화는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다만 외무성 대변인이 핵문제는 북-미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고 거듭 주장해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핵 의혹의 완전 해소가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역시 북한의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입장▼

북한이 북-미 양자대화만을 고집하다가 태도를 바꾼 것은 이라크전을 지켜보면서 느낀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라크전이 끝나면 미국의 관심이 북핵 문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북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핵 의혹 해소 요구를 계속 무시하고 대화조차 거부할 경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을 강행한데다 조기 종전을 이끌어 낼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한 것을 보며 북한도 위협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제스처를 보여줘야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응징’을 모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도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다자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에 동조하고 나서자 북한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셈이다.

북한은 그러나 다자대화에 응할 뜻을 밝히면서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압살정책’ 포기와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어 대화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한미 양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북핵 문제 관련국들이 아직 다자대화의 형식에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다자회담 수용 의사에 따라 조만간 관련국들이 다자대화 틀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시켜 윤곽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다자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멀다.

북핵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체제 보장뿐 아니라 대북 경제지원 등 여러 가지 사안을 함께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미국의 반응▼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에 대한 미국의 첫 반응은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필립 리커 미 국무부 대변인이 “우리는 적절한 외교채널을 통해 대응하겠다”고 말한 것은 우선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적절한 외교 채널’은 뉴욕의 유엔 북한 대표부 채널은 물론 북한과 외교 관계가 있는 중국 러시아를 통한 채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며 미국은 아직 대화의 틀을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인 만큼 당장 가시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뉴욕에서 잭 프리처드 대북(對北) 교섭담당 대사와 북한 한성렬 대사간의 접촉을 시작했으며, 이 자리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이 참가하는 ‘6자 협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 밖에도 학술회의 등 다양한 방식의 비공식 접촉을 통해 상대의 의중을 타진해왔으며 북한의 태도 변화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어떤 형태의 다자대화 형식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다자대화 틀 안에서 북-미 양자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등이 참여하는 ‘P5+5’ 방안,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참가하는 ‘2+4’ 등 다양한 대화 방식이 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어떤 특정한 대화 형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입장도 아직은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미국이 외교적 채널 등을 통해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고,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화의 틀을 결정한 뒤라야 북-미대화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