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화준/‘파격인사’ 성공하려면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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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각료와 청와대 비서진 임명은 예고된 대로 파격적 인선(人選)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노 대통령의 인선에서 우리는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선이 과연 의도했던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권력’과 ‘권위’의 차이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이뤄진 파격적 인선이, 의도한 개혁은 이룩하지 못한 채 정부조직의 혼란과 정책 혼선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밀어붙이기식 개혁은 곤란▼

게임이론에 의하면 상대방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전략적 수(strategic move)’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공약(credible commitment)’을 한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의 청사진을 직접 실천할 관료의 마음과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수’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파격적 인사를 예고했다. 선언의 성격을 띤 전략적 수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고된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개혁 실천의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이 같은 인선이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힘의 쟁취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관료와 대학의 연구자, 싱크탱크, 대중매체, 이익집단 등 정책공동체의 자발적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지 않은가. 관료들을 힘으로 눌러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자발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면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 정부에서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권력’이 아니라 ‘권위’가 더 요구된다. 권력의 힘이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라면, 권위는 전달된 메시지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토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리더십의 권위를 받아들일 때, 더 많은 창의적 노력과 자발적 협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변동을 ‘정규적 패턴의 변동’과 ‘패러다임 변화적 변동’으로 구분한다면, 힘은 현존하는 정책패러다임 내에서 부분적 정책개선을 이룰 수 있을 뿐이고, 권위는 정책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근본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패러다임 변화가 세상을 보는 기본적 가정이 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정책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념이 바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비추어 보면, 노무현 정부하에서는 역대 어느 정부에서보다 패러다임 변화적 변동이라 할 수 있는 근본적 정책변동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개혁과제들을 설계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관료들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이며 헌신적인 에너지가 절실히 요구된다.

아울러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책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협조다. 이들은 관료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힘의 과시가 아니라 누구나 수긍하고 동의할 수 있는 정책목표와 경험, 전문성에 토대를 둔 리더십의 발휘가 절실히 필요하다.

▼구성원 자발적 협력 끌어내야▼

현대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며 여러 부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이는 근본적인 정책변동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문간의 조정과 고도로 치밀한 추진전략 설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막대한 정책전환비용이 소요된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의약분업 정책에서 이 같은 천문학적 정책전환비용을 경험한 바 있다.

이제 새 내각은 경험과 전문성에 토대를 둔 권위를 보완해 관료들과 정책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력과 노력을 이끌어내는 개혁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노화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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