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씨 "'신의주장관 제의설' 어이없다"

  • 입력 2002년 10월 11일 22시 56분


11일 저녁 한국일보가 ‘북한이 박태준(朴泰俊) 전 국무총리에게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새 장관직을 제의했다’고 보도한 직후, 청와대 통일부 국가정보원은 물론 정치권도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한국일보는 이날 저녁 배달된 12일자 1면 머리기사에 박 전 총리와 가까운 재계 고위인사의 말을 인용해 “중국정부가 양빈(楊斌) 신의주 특구장관을 체포한 직후 북한이 박 전 총리에게 특구 장관직을 제의했으며, 박 전 총리도 이에 강한 의지를 갖고 조만간 자신의 입장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보도는 곧 해프닝으로 끝났다.

고향인 경남 양산시에 칩거하고 있는 박 전 총리는 보도 내용을 전해듣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제의가 온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박 전 총리는 사실확인 전화를 걸어온 지인(知人)에게 “어떤 놈이 (나를 특구 장관에) 임명한다는 말이냐”라며 어이없어 했다는 전언이다.

박 전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영장(趙榮藏) 전 의원도 “대한민국의 총리를 지낸 양반이 어떻게 북한의 행정구 장관을 할 수 있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고 반박했다. 그는 “TJ(박 전 총리의 영문이니셜)는 건강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여기(남쪽) 상황도 있는데…”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리는 2000년 5월 총리직을 물러난 뒤 일본에서 요양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폐에 생긴 물혹 제거수술을 받고 올 5월에 귀국, 양산 고향집에 머물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왔다. 올해 초 여권 일각에서 박 전 총리에게 전경련 회장직을 맡기는 방안이 검토된 적도 있었으나, 건강 문제 때문에 ‘아이디어’ 차원에서 끝난 적도 있다.

청와대와 국정원측도 한국일보 보도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양빈 장관이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박 전 총리에게 그런 제의를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만일 북한이 박 전 총리에게 그런 제의를 하려면 우리 정부의 대북채널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데, 전혀 그런 협조요청이 없었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빈 카드’를 쓸 수 없게 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신의주 특구 구상을 살려나가려면 남한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고, 또 김일성 주석이 ‘박정희식 근대화’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 몇 가지 변수를 ‘조합’한 정보시장의 루머가 와전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北국적 취득-충성맹세해야 특구장관 가능▼

박태준(朴泰俊) 전 국무총리를 신의주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이 발표한 신의주 특구기본법 77조에 따르면 장관은 신의주 특구 주민이어야 한다. 신의주 특구법이 규정한 신의주 주민이 북한주민을 뜻하는지 영주권 개념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이는 북한 국적을 취득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특히 특구기본법 78조의 “장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신의주 특별행정구에 충실할 것을 선서한다”는 조항은 국가보안법 등 국내법과도 충돌한다. 우리 국민이 북한 정부에 충성을 선서하는 것은 ‘이적단체’인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이다.

다만 우리 정부가 북한의 개혁을 지원한다는 정책적 고려를 해 이 같은 법적인 문제를 덮어둘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신의주 특구를 성공시켜 개방으로 나간다는 보장만 있다면 특례규정을 만드는 방법도 없지 않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도 최종 판단은 결국 국민 여론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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