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관광-경의선 해결되면 2∼3개월뒤 280억 대북지원”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33분


4일 정무위와 재경위의 국정감사장에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의혹을 제기한 이후 잠적했던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가 나타나 대북송금 가능성을 재확인함으로써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00년 8월 청와대 경제장관회의 성격〓정부는 그동안 “당시 엄낙용 전 총재가 참석한 경제장관회의는 현대상선이 아닌 일반적인 경제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엄 전 총재의 주장을 반박해왔다.

그러나 엄 전 총재는 “회의가 끝나갈 무렵 현대상선 김충식(金忠植) 전 사장의 이야기를 분명히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 진념(陳稔) 전 재경부 장관,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모두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설을 알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엄 전 총재는 당시 오규원(吳圭元) 전 이사의 보고만 들은 것이 아니고 김 사장을 직접 만나 들었다고 말해 취지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상선 김 사장은 엄 전 총재를 만나 처음에는 4000억원을 갚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나중에는 입장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그 시점도 엄 전 총재가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국가정보원 김보현(金保鉉) 3차장을 만난 뒤여서 정부가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을 통해 김 사장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 1000억원 자금세탁 의혹〓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산업은행 당좌대출금 4000억원 가운데 1000억원이 교보증권을 통해 돈세탁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당 임태희(任太熙) 의원은 “이 돈은 현대건설 기업어음(CP) 매입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는데 전반적인 맥락은 임 의원의 주장이 타당한 듯하다.

현대상선은 2000년 6월 8일부터 부도위기에 몰린 현대건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는데 교보증권에 1000억원이 입금된 시기는 현대건설 CP 1000억원 매입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4000억원을 자기앞수표로 인출해 교보증권에 1000억원을 입금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자금세탁 흐름과는 잘 맞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착수금 3000만달러 의혹〓자민련 이완구(李完九) 의원이 제기한 현대상선 3000만달러 인출은 아직 용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과는 96년부터 해외현지금융 거래를 해왔고 정상적인 경상운항경비 명목으로 인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운항경비로 사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대기업이 비자금을 외국으로 빼돌릴 때는 해외현지법인을 자주 이용한다. 3000만달러가 한꺼번에 인출된 4월 4일은 남북정상회담 발표 직전이어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착수금으로 북한에 보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요시다(吉田)는 대북밀사”〓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북한계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猛) 신일본산업 사장이 2000년 남북한을 오가면서 ‘4000억원 지불’이란 뒷거래에 밀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현대측이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측과 접촉한 것은 2000년 3월. 정몽헌 회장이 3월9일 국가정보원 김보현 3차장 및 서영교 국장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원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정 의원에 따르면 송호경 위원장은 정상회담을 2주 앞둔 6월 1일 베이징(北京)에서 요시다 사장을 다시 만났다. 송 위원장은 이때 “도청 때문에 박지원(朴智元) 문화부 장관과 통화하기 곤란하니 서울에서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시다 사장에게 말했고 요시다 사장은 그날로 방한해 박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것. 이때 박 장관이 육로관광실현이나 관광특구지정 등을 조건으로 북측에 2300만달러(약 28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 정 의원의 주장이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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