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민주당이 그런 중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근거로 제시한 이유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이라는 데 있다.
‘박 의장 거부’ 엄포는 국회 법사위 함석재(咸錫宰) 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1일 검찰총장에게 몰려가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담당부서를 바꾸라고 요구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한나라당의 행위는 국회가 행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므로 국회의장이 함 위원장을 사퇴시키지 않는다면 박 의장이 주재하는 회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민주당은 박 의장의 공개사과까지 요구했다.
함 위원장 등의 행동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고,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개별 행동까지 국회의장이 책임을 지라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회의장은 선출직인 상임위원장을 사퇴시킬 권한도 없다.
억지를 부리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정치공작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강재섭(姜在涉)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번 주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검토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병역 공세 등 ‘공작정치’를 김 대통령이 배후조종했다는 주장이었으나 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양 당의 이 같은 ‘어린이 떼쓰기식’ 주장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의 공격목표인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모두 당적을 버린 상태여서 엉뚱한 화풀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끝없는 정쟁에 대한 국민의 혐오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정쟁을 벌이더라도 금도(襟度)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김정훈 정치부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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