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억지의 政治

  • 입력 2002년 8월 2일 19시 12분


2일 오전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는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사회를 보는 모든 회의에 불참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뜬금없는 결정이 내려져 보도진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회의가 국회 본회의이고 보면 사실상 국회파행 불사를 선언한 셈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그런 중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근거로 제시한 이유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이라는 데 있다.

‘박 의장 거부’ 엄포는 국회 법사위 함석재(咸錫宰) 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1일 검찰총장에게 몰려가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담당부서를 바꾸라고 요구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한나라당의 행위는 국회가 행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므로 국회의장이 함 위원장을 사퇴시키지 않는다면 박 의장이 주재하는 회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민주당은 박 의장의 공개사과까지 요구했다.

함 위원장 등의 행동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고,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개별 행동까지 국회의장이 책임을 지라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회의장은 선출직인 상임위원장을 사퇴시킬 권한도 없다.

억지를 부리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정치공작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강재섭(姜在涉)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번 주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검토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병역 공세 등 ‘공작정치’를 김 대통령이 배후조종했다는 주장이었으나 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양 당의 이 같은 ‘어린이 떼쓰기식’ 주장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의 공격목표인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모두 당적을 버린 상태여서 엉뚱한 화풀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끝없는 정쟁에 대한 국민의 혐오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정쟁을 벌이더라도 금도(襟度)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김정훈 정치부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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