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부시 정상회담 내용과 전망]對北이견 못좁혔다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31분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정상회담을 통해 남긴 메시지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두 정상은 이날 거듭 북한정권의 변화와 함께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대처해 나갈 방침임을 밝히면서 위협을 통한 ‘벼랑끝 전술’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조성됐던 한반도 긴장 분위기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언명으로 상당부분 해소된 데다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의사를 재확인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같은 총론적 결실에도 불구하고 각론에 들어가 보면 이번 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의 대북 인식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WMD)와 재래식 무기의 처리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특효약’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WMD와 재래식 무기〓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WMD와 미사일 개발 수출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범세계적 노력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하지만 미국측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북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반(反)테러 국제연대의 지지와 협조를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대북 압박을 강하게 벌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선(先) 대화’를 강조하는 이면에 ‘채찍’이 감추어져 있는 셈이다.

또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회담에서 재래식 무기 문제 해결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부시 대통령이 재차 인정해주기를 기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 문제가 향후 한미 의견 대립의 불씨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첩첩산중 북-미 대화〓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은 이번 회담에 대해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두 정상이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를 정밀하게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대화에 하루 빨리 나서는 것말고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 것이란 얘기였다.

문제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인권 문제를 부시 대통령이 집중 거론한 점. 이는 북-미 대화 테이블에 북한인권문제도 올려놓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각개격파식 대북 협상이 북한에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전략적 실수를 초래했다며 모든 의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북-미 대화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두기자회견 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던 김 대통령도 이날 “우리가 대북 대화에 대한 진지한 제안을 한 만큼 북한이 하루 빨리 대화에 응하기를 바란다”며 북측을 압박하는 데 보조를 함께했다.

▽대(對)테러전쟁과 한미동맹〓반테러 전쟁을 계기로 한미동맹이 한반도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고 두 정상은 이런 발전적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테러 마약 등 초국가적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협력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지향해 나가자”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대테러 세계 전략을 수행하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성의 표시이지만 이런 미묘한 입장의 변화가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도 도래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 통상 현안〓두 정상 모두 ‘세일즈 대통령’답게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미측이 한국산 철강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국제적 규범에 맞게 해결해 줄 것을 촉구했고, 부시 대통령은 양국 간 자동차 무역의 불균형을 지적했다는 후문이다.

김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 정세 안정이 해외투자 유치 등 한국 경제의 안정적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한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양국정상의 입장
  항목김대중 대통령조지 W 부시 대통령
양측 인식 일치북한 위협론어떤 나라보다 절실히 느껴북한 위협 계속 증대
한미동맹우리 외교와 안보의 기반한국에 대한 안보공약 이행
북-미대화 북한이 대화에 응해야북한이 대화에 응해야
대량살상무기(WMD)반드시 대화를 통해 해결대화를 통한 해결 우선
여전한 인식 차이김정일 정권에 대한 인식대화가 가능한 지도자주민의 자유를 억압하며 WMD 만드는 ‘악의 축’
북한의 변화 평가외교관계 확대 등 변화와 개방의 가능성 보여줌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 부응하는 실천적인 조치 있어야
햇볕정책 효용한반도 냉전 종식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간 화해협력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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