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사퇴'는 다목적 카드…전격 사표수리 왜 했나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3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참모와 메신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온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의 사퇴는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맞물려 향후 정국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표수리 배경〓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복심(腹心)’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원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민주당 내분 사태를 조속히 가라앉히기 위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조치로서의 성격이 짙다.

특히 박 전 수석의 사퇴는 일차적으로 김 대통령의 운신 폭을 넓혀 주려는 판단에 따라 ‘본인의 의지’로 이뤄졌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 청와대를 향한 쇄신파들의 시비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란 얘기다.

실제로 박 전 수석은 7일 저녁 김 대통령을 면담,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의지를 확인한 뒤 이상주(李相周)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 전 수석의 사표 수리가 외유설을 일축, 쇄신파와의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는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측에 대한 ‘무언의 압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는 달리 김 대통령이 총재직 사퇴에 이어 박 전 수석의 사표까지 즉각 수리한 것은 정국 정면돌파를 위한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왜 박지원인가〓9월 당정개편에서 당시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이 당 대표로 자리를 옮긴 이후 박 수석이 사실상 청와대 비서실의 유일한 중심축이 되면서, 그의 독주에 대한 비판이 증폭돼 왔다. 정치 경험이 적은 이상주 비서실장과 유선호(柳宣浩) 정무수석의 기용이후 그에게는 ‘왕수석’이란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지난해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아 문화관광부장관에서 물러나는 등 각종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점도 결국 쇄신파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게 되는 빌미가 됐다.

최근 들어서는 여권 내 대권경쟁 구도와 관련,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함께 이인제(李仁濟) 전 최고위원과 가깝다는 설이 나돌면서 반(反) 이인제 진영의 집중공격 대상이 됐다.

▽향후 역할은〓박 전 수석은 이날 사표수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서로서 대통령 보좌를 충실하게 하지 못해 오늘에 이르게 된데 대해 크게 뉘우친다”며 “당분간 푹 쉬겠다”고 말했다.

여권 내에서는 박 전 수석이 비공식 라인에서 김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박 전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신임도 여전한 것으로 안다”며 “박 전 수석은 밖에서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총재직 사퇴로 당이라는 지지기반이 없어진 만큼 김 대통령도 이제는 시비를 초래할 일은 극력 자제하게 될 것”이라며 박 전 수석의 향후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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